아름답다고 부르기 전, 내가 잠깐 멈춰 서던 날들

by 화려한명사김석용

아름답다고 부르기 전, 내가 잠깐 멈춰 서던 날들

글 / 김석용

아침 6시 47분. 창문은 옅게 김이 서리고, 복도 형광등은 한 박자 늦게 켜졌다. 전기 냄새와 함께, 커피가 식어가는 냄새가 좁은 공간에 먼저 앉았다. 나는 머그컵을 한 손으로 감싸 쥔 채, 문고리에 손을 올리고도 잠깐 그대로 서 있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가 손바닥에 붙었다. 컵이 내 손을 붙잡는 건지, 내가 컵을 놓지 못하는 건지 구분이 흐려졌다. 목젖이 한 번 천천히 움직였다. 숨이 짧아졌다가 길어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식은 커피를 한 번 더 흔들어 보았다. 안에서 작은 파도 소리가 났다.

그날은 별일이 없을 줄 알았다. 현관을 나서기 전에 휴대폰 화면이 한 번 빛났고, 오래 연락 없던 이름이 떠 있었다. “오늘 시간 돼?”
나는 잠깐 멈춘 채로 답장을 썼다 지웠다. 결국 짧게 보냈다. “응. 잠깐.” 그 한 글자가 화면에서 작게 떠 있는 동안, 식은 커피는 더 식어 갔다.

약속 장소는 동네 작은 카페였다. 창가 자리에 앉자, 겨울빛이 테이블 끝을 얇게 긁고 지나갔다. 상대는 내 얼굴을 한 번 보고는 웃지도 찡그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요즘은 좀 덜 급해 보인다.”
나는 웃는 대신 컵을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방금 끓인 커피였는데도, 내 손끝에서는 이미 식은 커피 같았다.

그 말이 대단한 위로였던 건 아니다. 다만 그 순간, 마음이 아주 조금 방향을 틀었다. 예전의 나는 이런 말 앞에서 곧장 해명을 꺼냈다. 왜 바쁜지, 왜 이럴 수밖에 없는지, 오늘도 얼마나 버텼는지. 그런데 그날은 설명을 꺼내기 전에, 컵의 미지근한 무게가 먼저 느껴졌다. 나는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쓰지도 달지도 않았다. 그냥 오래 기다린 맛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며 짧은 금속 소리가 났다. 숫자가 천천히 올라갔다. 그 작은 움직임을 보고도 나는 또 한 번 멈췄다. 내가 멈춘 건 대단한 결심 때문이 아니었다. 속도를 늦추는 쪽이, 그날은 이상하게도 더 자연스러웠다.

문을 열고 들어와, 아침에 남겨 둔 머그컵을 바라봤다. 이미 완전히 식어 있었다. 그런데도 버리기 전에 잠깐 다시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 온도는 늘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나는 늘 지나치기만 했다는 듯이.

당신도 그런 날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름을 붙이기 전에, 이유를 만들기 전에, 식은 커피처럼 조용히 곁에 남아 있던 순간에 발이 잠깐 멈추던 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