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아이

by 김민아

나는 숨겨진 아이다. 가면을 쓰고 숨겨지지 않은 척해야만 했었다. 난 가면을 쓰는 게 능숙했다. 어려도 나쁜 건 빨리 습득하게 되는 게 참 안타깝지만 나는 가면도 여러 개 존재했다. 어떤 때는 아빠가 유능한 교사였고, 엄마는 나를 엄청 사랑했으며, 언니들 사이에서 다복하게 자란 아이였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다 가짜였다. 난 그저 숨겨진, 안 보이는 아이였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엄마가 결혼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에겐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5살 미술 학원을 다니면서 느낀 어딘지 모르겠는 차별을 나는 당해야 했다. 당연히 있어야 할 아빠가 없었던 나는 미술 선생님에겐 그저 괴롭혀도 아무렇지 않은 대상일 뿐이었다. 내 실수는 내 잘못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고 그게 왜 그런지 나는 그 당시 알 수 없었다. 엄마에게도 물어보았다. 난 왜 아빠가 없느냐고. 그러나 돌아오는 건 침묵뿐이었다. 내가 동생이 생긴 다른 친구를 부러워할 때 엄마가 느꼈을 좌절감은 어땠을까 생각도 든다. 나도 동생이 갖고 싶다고 철없이 말하는 5살짜리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심정이란.......


나도 이제 엄마가 되어 느낀다. 혼자 오롯이 아이를 키워야 했을 30대의 엄마를. 그러나 그래선 안 됐다. 나를 숨겨서는 안 됐다. 어쩌면 엄마는 그게 최선이었다고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안 됐다고 자기 위안을 할지도 모른다. 난 철저하게 숨겨졌으며 엄마의 세상에 나오면 안 되는 아이였던 것이다.


소속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어린 나에겐 아주 큰 불안감을 느끼게 했다. 엄마라는 울타리가 없다는 것이 나에게는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이상하게 엄마라는 단어에 눈물이 자주 흘렀고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가짜라는 것에 항상 기가 눌려 있었다. '아빠가 선생이라는 데 저런 집에 사나?', '언니들이 많다고 했는데 왜 혼자지?'라는 의심과 의구심들이 나를 둘러쌌고 결국 나는 나를 더 철저하게 감추고 가면을 여러 개 돌려 쓰게 되었다.


어른이 시킨 거짓말이 아이를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지 몸소 체험을 한 셈이다. 정직하지 않음, 설명되지 않음에 대한 그 모호한 감정이 때로는 독이 되어 아이를 성장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체험해야 했다. 그래서 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참 싫다. 정확히는 거짓말을 하게 한 어른, 엄마가 싫었다. 왜 내가 이런 거짓말을 해야 하는지. 그냥 이모랑 살고 있다고 난 맡겨진 아이라고, 새아빠는 교사인데 엄마와 따로 가정을 꾸리고 산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게 했는지 참 알 수 없었다.


결국 엄마는 자신의 체면, 자신의 위신 그 어느 것 하나 지키기 못했으면서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지키기 위해 어린 나에게 거짓말을 시켰으며 난 착한 딸이 되어야 엄마와 함께 소속감을 느끼며 살아가리라는 가당치도 않은 희망을 품으며 열심히 거짓말 안에 갇히게 된 것이다.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다 보면 재혼 가정에서 느끼는 소속되지 못한 아이의 우울감이 나에게도 전이되고, 랜선 육아를 하며 실제로 부모가 키우지 않는 아이의 허전함이 나에게도 전이가 된다. 나의 어린 시절 아픈 기억들이 되살아나 나를 다시 찌르는 것 같다. 내가 그래서 더 '금쪽같은 내 새끼'를 챙겨보는 건지도 모른다. 자꾸 건드려지는 아픈 기억에서 내 슬픔을 치유하고 싶은가 보다. 솔루션을 받고 나도 소속감을 느끼고 싶고 결국 아이의 잘못이 아니었으며 어른의 잘못으로 아이가 힘들었다는 그 결말이 나에게는 위로가 되나 보다.


나쁜 아이는 없다. 나쁜 개가 없듯이 나쁜 아이도 세상에 없다. 난 착한 아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엄마의 말에 순종하며 엄마의 말을 따르면 언젠가는 엄마와 함께 그 가족에 들어가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도 이렇게 숨겨질 거란 걸 예상도 하지 못했다. 내 존재에 대해서 누군가는 알겠지 생각했다. 새아빠라는 사람도 나에게 관심이 있는 듯 보였고, 친척들도 내 존재를 알고 있었으며, 한 번 보지 못했던 언니라는 사람들도 내 존재를 안다고만 생각했다. 그나마 위안을 가졌던 것 같다. '그래, 새아빠와 새언니들은 나를 그래도 알 거야.'라는 조그마한 희망을 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내 아이가 초등학교4학년이 되어도 그들은 알 수 없었다. 내 존재 자체를 몰랐다. 어쩜 그렇게 철저하게 숨길 수 있느냐고 어쩜 그렇게 태연하게 하나의 생명을 없는 사람 취급할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내가 더 울분을 참지 못한 이유는 나도 엄마였기 때문이다. 내 아이의 사진이 엄마의 집에는 걸리지 않고 그들의 삶에 내 아이의 존재 또한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엄마로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내 아이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밝게 키우며 느낀 것은 나 또한 이런 사랑을 받았을 수 있었을 텐데라는 것이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해서는 안 되는 짓을 내 엄마는 나에게 저지른 것이다. 존재를 부정하는 것! 그것 하나로 내 인생이 다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언젠가 엄마의 가족을 만나리라 다짐했으며 그러리라 믿었던 것 같다. 어디에서 보든 어디에서 만나든 부끄럽지 않게 만나고 인사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숨겨진 아이로 38년을 살아가는 기분은 참 더럽다. 친척들도 하나같이 은폐하고 은닉하는 같은 방관자였다는 생각만 든다. 어쩜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한 존재에 대해 오래도록 무시하고 부정할 수 있을까 싶었다. 내 아이를 낳고 엄마라는 존재로 거듭났을 때 엄마에게 느낀 배신감에 엄마를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로서 해서는 안 되는 자신이 낳은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를 한 내 엄마를 용서할 수 없었다. 엄마라는 삶에서 내가 엄마로 살면서 당연히 겪어야 할 엄마의 존재는 없었다. 따뜻한 밥 한 끼 차려주던 엄마는 없었으며 내가 힘들고 아플 때 다른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었다. 내가 고3 때는 새아빠와 낳은 아이의 엄마로 그 아이 곁에 머물며 미국에서 유학까지 하는 헌신적인 엄마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내 존재는 철저하게 부정당했고 투명인간 취급당했다.


그래선 안 됐다. 이제야 용서를 구하는 엄마를 보며 이제 나도 포기를 하게 되었다. 본인이 아프고 슬플 때 나에게 감정을 쏟아붓는 그런 행동들을 하면 안 됐다. 나에게 새 언니들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다 일러바치는 유치함을 보여주어서는 안 되었다. 난 그들의 얼굴도 그들의 삶도 그들의 가족관계도 다 알 필요가 없었다. 그들처럼 나는 그저 모르는 사람일 뿐이었으니까.


이제 나는 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 가족과 내 집과 내 삶의 터전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 더 이상 가족에 대한 미련도 남아 있지 않다. 그저 엄마의 삶이 있었다면 내 삶도 이제는 존재한다. 엄마는 나약해졌다. 연민의 대상으로 이제 본인의 위치를 세팅했다. 내 삶의 아픔과 슬픔을 본인의 아픔, 죽음 앞에서 상쇄하고자 한다. 난 철저히 부정당한 존재로 엄마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직까지 난 숨겨졌으며 더 이상 그들과 교류하고 싶은 생각도 일말의 희망도 없다. 내가 가진 희망이 이제는 철저히 외면당했으므로 39살이 되는 이 해의 마지막 글에서 내 희망도 잘 정리하고자 한다. 엄마의 또는 새아빠의 장례를 가까운 시일 내에 치러야 한다면, 난 갈 수 없다. 가지 않는다. 이제는 친척들도 다 똑같은 방관자였음에 비통함을 느낀다. 내 존재에 대해 함구무언했던 그 시간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던 이모, 사촌들이 다 내 존재를 감쪽같이 모른척하고 모두 다 하나같이 감추고 있던 사실이 소름 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