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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도쿠 Mar 23. 2019

살면서 두 번의 짝사랑을 했다

살면서 두 번의 짝사랑을 했다. 정말 딱 두 번만 했다기보다는 가장 기억에 남는 짝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내가 이성을 볼 때 하나의 기준 같은 것을 만들어 준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을 만난 이후로 비슷한 스타일을 가진 이성에 끌리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그 사람들을 못 잊어서는 절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생겼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두 번의 짝사랑 중 하나는 대학 때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한 살 연상의 누나, 그리고 또 하나는 군대 전역 후, 맛집 모임에서 만났던 한 살 연상의 누나이다. 두 사람 모두 한 살 연상이라는 오묘한 공통점이 있다. 같은 대학을 다녔던 첫 번째 누나는 지금도 잘 연락하고 지낸다. 역시 대학교라는 연결고리가 있어 많은 인간관계를 공유하기 때문에 쉽게 끊을 수 없는 인연이 되었다. 얼마 전, 생일이어서 축하 문자를 보냈고 그 김에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다. 그 누나는 결혼하고 현재 미국에 가 있는 터라 미국 생활의 재미난 점을 얘기해 주었다. 한국이 그리워질 법도 하지만 듣다 보니 별 일 없이 잘 지내는 것 같았다.


두 번째 짝사랑은 고백하고 차인 이후로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없다. 지금은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안주 삼아 이야기하는 추억거리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꽤나 마음에 상처를 입은 모양이다. 그 누나를 정말 좋아하긴 했었다. 자려고 누웠는데 잠시 그녀 생각을 하다가 어느새 아침을 맞은 적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한 사람을 생각하면서 밤을 지새웠던 적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쩜 그렇게 좋아했을까 싶다.


그녀는 맛집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전역 후,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단순히 이성이 아닌, 나란 사람이 사람들과 얼마나 잘 어울릴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내가 미래에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몰랐고, 일단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사람 만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다 우연히 맛집 모임을 발견했고 망설임 없이 신청했다. 약속 장소에 가니 6명 정도 되는 인원이 나와 있었고, 2명의 주최자 중 1명이 지금 오고 있어 잠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내 성격상 기다림에는 매우 관대한 성격이므로 불만 없이 기다렸다. 당시 1월 한창 추운 날씨였다. 우리는 몸을 녹일 곳을 찾아 잠시 카페로 들어갔다. 잠시 후, 한 여성이 들어왔다.


단발머리에 머리띠를 하고 있었고, 당시 파란색의 코트를 입고 있었다. 키는 작았지만 그녀에게 남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솔직히 예뻤다. 내가 보자마자 처음 든 생각은 '저런 사람은 어떤 사람과 만날까'라는 생각이었다. 도도할 것이란 인상과 달리 그녀는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고, 게스트로 나온 나와 같은 사람들을 친절하게 챙겨주었다. 우리는 고깃집에서 식사를 했는데 그녀는 내 옆에 앉았고 서로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간호학과에 다니는 사람이어서 매우 친숙하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우리 어머니의 직업이 간호사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30년 이상 근무하는 베테랑 간호사이다. 당연히 더 호감이 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당시 전역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자신감이 폭발하던 시기였고, 스타트업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새로운 꿈과 미래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한 잔 두 잔 넘어가는 술의 힘으로 그녀 앞에서 멋지게 나의 꿈과 미래를 얘기했고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나의 얘기를 경청했다. 당시 모임이 끝나고 해당 모임에 대한 리뷰를 쓸 일이 있었는데 내가 쓴 글이 그녀에게 재밌게 느껴진 듯했다. 잘 봤다는 연락이 왔고 그때부터 우리는 자주 연락하게 되었다.


내가 근무하던 스타트업 기업에서 네트워킹 파티를 기획하고 있었고, 함께 근무하던 동료들은 각자 파트너를 데려오기로 했다. 나는 그녀에게 함께 가자고 청했고, 다행히 그녀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흔쾌히 허락했다. 진짜 하늘을 뚫고 올라갈 듯이 기뻤다. 신나는 마음에 사무실에서도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던 것 같다. 그러나 며칠 뒤 날벼락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비용 문제로 네트워킹 파티가 취소된 것이다. 실망감이 컸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로 했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를 모두 내포하는 말이다. 지금의 위기가 다시 기회로 반전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대신 영화를 보러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답장은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보러 가겠다는 그녀의 답장에 내 심장이 뛰었다. 이미지도 아닌 텍스트 몇 자에 내 심장이 마음대로 두근댔다. 보통 이런 경우에 걱정과 불안감이 앞서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병장 계급을 달고 만기로 전역하여 세상 무서울 것이 없던 시기였다. 그녀를 즐겁게 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우리가 본 영화는 '7번 방의 선물'이었다. 마지막 장면쯤에서 영화관 내에 여기저기서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물이 나오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만한 장면이었지만 내 얼굴에는 미소가 한가득했다. 옆에서 울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절로 미소가 나와 멈출 수가 없었다. 그 영화를 행복감이 가득한 미소 지으며 본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지 않을까. 아무튼 그 이후로 우리는 몇 번 더 만났다.


만나면 만날수록 내 마음은 커져만 갔다. 알면 알수록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애교가 많은 사람인 줄은 몰랐다. 함께 맥주를 먹을 때 내가 장난을 친 적이 있었는데 조금 부끄러웠나 보다. 맥주잔을 들어 얼굴을 가리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보였다. 이런 사람은 내 생애 다시 또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현학적인 모습을 많이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잊고 싶은 흑역사 중에 하나인데 당시 사르트르, 하이데거 등 실존주의 관련 철학책을 많이 읽었다. 삶을 주체적으로 살면서 의미를 찾아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면 좋았을 테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그냥 뽐내고 싶었다. 멋진 말로 주변 사람의 환심을 사고 싶은 발악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입만 열면 어려운 이야기를 떠들어 댔는데 그녀는 언제나 내 눈을 보며 경청해 주었다. 그러니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전하지 못한 진심은 가슴속에 남아 사람을 아프게 한다. 그녀 앞에서도 그녀의 마음을 몰라 애를 태웠다. 무언가 가득 차면 결국 넘쳐흐를 수밖에 없듯이 가슴속에 좋아하는 마음이 가득 차니 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좋아한다고. 분명하게 얘기했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고 나는 꽤나 상처를 받았는지 이후로 다시 연락한 적이 없었다. 먼저 연락이 오기도 했지만 모든 것을 차단했고 나의 짝사랑은 거기서 끝을 맺었다.


그녀에게 연락하려면 사실 지금도 가능하다. 그러나 7년이나 지난 지금 연락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좋아했던 기억은 있으나 좋아했던 감정은 사라졌다. 기억과 감정의 괴리는 생각보다 크다. 그녀는 내 머릿속에서 실제 모습보다 더 예쁘게 남아있길 바란다. 언제나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추억을 곱씹을 수 있게. 아쉬움도 아닌, 그리움도 아닌 한 때 나의 순간들을 빛나게 해주었던, 좋은 기억으로만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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