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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도쿠 Mar 23. 2019

서른은 부족하다

벌써 3월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겨울이 지나 봄이 되었다. 요즘 미세먼지가 많아 봄 같은 느낌은 덜하지만, 그래도 두껍게 입지 않고 돌아다닐 만큼 따스한 기운이 전해 온다. 야외를 맘껏 활보할 수 없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므로 일단 너그러이 푸른 하늘을 기다려야겠다.


2019년도 벌써 3개월 차에 접어들었고, 다르게 말하면 나의 30대도 똑같이 3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서른이 되면 특별한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평범하게 흘러가는 일상이 확 뒤집히는 이벤트라도 발생할 줄 알았다. 서른 살이 되어도 스물아홉 살과 크게 다를 것은 없다. 그래서 별다른 아쉬움이나 기대감도 없는 듯하다. 다만, 언론이나 주변에서 말하는 20대의 범주에 이제 내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 어디 가서 '요즘 20대는~,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 시작하는 말을 못 하게 되었을 뿐이다.


나는 사실 일찍 결혼하고 싶었다. 20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항상 서른 이전에 결혼할 것이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 그때는 막연하게 일찍 하고 싶었다. 졸업 직후, 바로 일을 시작하기 위해 남들보다 취업 준비도 일찍 했다. 다행히 졸업 이전, 지금의 회사에 합격했고 당시 내가 벌고 있는 돈은 언젠가 서른 살 즈음의 결혼을 위한 자금이 될 줄 알았다.


돈을 흥청망청 쓰는 스타일도 아니고 시계, 벨트, 향수 등 명품 같은 것에 크게 관심이 없다 보니 자연스레 돈은 모였다. 여행도 충분히 다녔고, 자기 계발에도 꽤나 비용을 썼으며, 사적인 모임에도 많이 나갔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곳에 돈 쓸 데가 없었다. 일단 나는 차도 없다.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차야말로 재테크의 가장 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구매할 생각도 없다.


스무 살 때 봤던 서른은 함부로 범접하지 못할 어른이었다. '서른 즈음에'란 노래가 있듯이 고독하고 씁쓸한 감정을 음미하는 위대한 어른 같았다. 그런데 웬걸. 내가 막상 서른이 되어보니, 그리고 주변 친구들을 둘러보니 너무나 철이 없고 아직도 어리다는 느낌이 가득하다. 우리보다 서른을 한참 일찍 통과한 선배들에게 배신감이 든다.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서른의 나이로 그렇게 허세를 부린 것인가. 마치 인생의 정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후배를 향한 직언을 멈추지 않았던 그 서른들이 고작 이 정도에 불과하단 말인가. 공자는 서른 살을 이립이라고 표현했지만, 아직 두 발로 서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세월이다.


여전히 너무나 흔들린다. 꿈과 미래라는 단어는 내 삶의 이정표가 되었지만 20대보다 30대가 된 지금, 이정표대로 향하는 발걸음이 더욱 두렵다.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말 그대로 불혹의 나이가 된다고 해도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가 살면서 본 어른들은 언제나 흔들리고 있었다. 사소한 것에 마음 상하고 다투기도 하며 별 것 아닌 일에 걱정하고 고민하여 밤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언제나 부족하다는 느낌일까.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철이 들지 않을까. 철이 들지 않은 채 짐짓 엄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주변 사람에게는 정숙한 모습만 보여주지 않을까. 궁금하다. 그리고 기대된다. 옛날 서른은 요즘 서른보다 좀 더 어른 취급을 받았던 것 같다. 좀 더 성숙했기 때문일까. 물론 기대수명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가치관마저 다르기 때문에 지금과 동일한 서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성숙한 삶을 이룩하기에 예전도, 지금도, 미래도 서른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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