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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도쿠 Mar 22. 2019

너와 나의 세계는 다르다

얼마 전에 한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방송국에서 일하는 친구였다. 오랫동안 공부만 해서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못했는데 처음으로 취업을 하게 되면서 돈을 벌고 경제적으로 독립하게 됐다. 취업 당시 본인은 무척 행복하다는 얘기를 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해방감을 처음 느껴본다고 표현했다. 그러던 친구가 6개월 후에 다시 만났을 때는 본인의 삶이 무척이나 권태롭다고 말했다. 처음에 돈을 벌 때는 좋았는데 매일 똑같은 삶이 반복되니 이제는 지루하다는 것이었다.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세계관은 보통 주관적인 경험에 많은 영향을 받는 법이다. 자신의 삶이 권태로우니 세상의 모든 사람이 권태롭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 친구가 말하는 권태는 자신을 넘어 세상을 넘어 역사까지 뻗어갔다.


그 친구의 말은 이렇다. 세상 모든 사람은 권태를 느끼고 어떻게든 이것을 풀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규제된 법이나 제도, 도덕을 어기고 나쁜 행동을 저지르는 것이다. 어쩌면 인류 역사상 일어났던 모든 전쟁들도 삶이 지루하고 심심해서 생긴 것 같다는 표현을 했다. 그냥 살아도 될 텐데 괜히 왕이 심심하니까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속으로 참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겉으로도 속마음을 그대로 전달했다. 그 친구는 자신의 말이 지나친 억측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일리 있지 않냐는 얘기를 했는데 무응답으로 대응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의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굳이 어떤 근거를 대지 않아도 누가 들어도 직감적으로 이상한 말이라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 친구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있고 많은 생각이 있다. 모두의 생각은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어도, 단 한 사람도 동일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각자가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겪어온 경험이 다르다. 우리의 세계는 뇌와 감각기관이 인지하는 것 이상으로 무언가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결국 세계란 자신이 인지하는 정도와 범위까지만 볼 수 있기 마련이고, 그것이 세계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본인이 인식한 그 세계관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세계라고 표현하지만 각각이 인식하고 있는 세계는 너무나 다른 것이다. 그 친구는 챗바퀴처럼 돌아가는 본인의 세계에서 그런 것을 느낀 것이다. 알고 있던 지식과 세계관을 버무려보니 권태라는 생각이 튀어나온 것이다.


결코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므로 어떻게 말하든 문제는 없다. 감히 '그것은 틀렸으니 넌 이렇게 생각해야 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너와 나의 세계가 다르니 말이다. 그러나, 요새는 어떤 잣대를 들이대며 '그것은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당신의 세계에서의 정답이 마치 나의 세계에서도 정답인 듯 이야기한다. 물론 나도 누군가에게 똑같은 반응을 보일 때가 많다. 그렇지만 한 번 더 생각하기로 했다. 내 생각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고, 세상의 전부여서도 안 된다. 솔직히 세상이 내 생각으로 가득 찬다면 분명 이상한 세상이 될 것 같다. 겪어보지 않아도 감이 온다.


너와 내가 인식하고 있는 세계가 다르므로 타인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기로 했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해하는 시늉까지는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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