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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도쿠 Dec 28. 2019

서른의 <드래곤볼>이란?

만화책 <드래곤볼>을 1권부터 34권까지 정독했다. 지금까지 드래곤볼은 4회 정도 정독한 것 같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때, 그리고 바로 지금이다. 30대가 되어 다시 읽어보니 감회도 남다르지만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단순히 악당을 무찌르는 주인공들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물의 삶이 보였다고나 할까. 거창하게 표현했지만 사실은 단순하다.


먼저 무천도사부터 얘기해보면, 처음 시작은 세계 제일의 무술가로 표현된다. 천하제일무술대회에서도 재키춘이란 이름으로 손오공을 꺾고 우승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실력자이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해지는 손오공을 비롯한 크리링, 야무치, 천진반 등은 물론 피콜로, 베지터와 같은 인물이 등장하고 나서는 그의 역할은 거의 없다. 이제 새롭게 나타나는 적은 모두 무천도사로서는 결코 감당할 수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뇌리에 그는 잊혀진다. 명예란 것이 원래 영원할 수는 없는 법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존재감은 매우 급격히 사라진다. 치고 올라오는 후기지수들을 상대로 밀려날대로 밀려난 그는 체면이 상할 법도 하지만 전혀 그 어떤 내색도 하지 않는다. 또한, 본인이 도움이 안될 상황인 것을 알면서도 세계를 지키기 위한 상황이라면 주저하지 않는다. 이를 보면 명예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불의는 참지 못하고,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그는 도사라는 소리에 걸맞는 어른인 것이다.


두 번째는 부르마이다. 시작은 드래곤볼의 여주인공으로서 극을 전개하는데 절대적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부르마가 없었으면 드래곤볼의 처음과 끝도 없었다. 그녀가 방학을 이용해 드래곤볼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난 덕분에 손오공을 만났고 갖가지 경험을 겪고 나서 더욱 강해진 손오공은 마침내 적들로부터 세계를 지킬 수 있었다. 촌구석에 박혀 아무 것도 모른 채 영원히 살아갈 수도 있던 손오공을 사회화한 것은 그녀이지만 그 점에 대해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는다.


세계 제일의 회사 '캡슐 코퍼레이션'의 자제로 어마무시한 재벌가 출신이지만 돈으로 결코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으며 도도하거나 까칠한 면도 없다. 오히려 수더분하고 가식도 없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부모님의 인성 교육도 매우 중요했겠지만 그녀 스스로도 많은 노력을 했음이 틀림없다. 언론에 소개된 재벌가의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부르마처럼 자라기는 정말 쉽지 않다. 천방지축이고 발랄했던 그녀는 추후 베지터와 부부가 되어 그의 아이들을 낳는다. 매일 싸움 연습만 하고 돈을 한 푼도 벌어오지 못하는 남편임에도 관계는 매우 화목해 보이며, 평생 행성을 돌아다니며 싸움만 해온 남편을 있는 자체로 인정해주는 모습까지 보인다. 손오공의 아내 치치와 달리 극성스러운 엄마도 아니다. 자녀에 대한 신뢰 때문일까. 트랭크스에 대한 교육에도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그 덕에 자유분방한 면은 있지만 트랭크스 또한 바르게 잘 자랐다. 물론 자본적 여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따를 수 있지만, 어찌 됐든 그녀는 이상적인 아내와 엄마 두 가지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냈다.


세 번째는 피콜로이다. 처음에는 악의 대마왕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항상 세계 정복이란 말을 무수히 하고 다닌다. 어렸을 적에는 모든 만화에서 대마왕은 항상 세계를 정복하기 꿈꾸며 주인공을 그것을 막는 역할인 것을 당연히 여겼다. 나쁜 놈이 있어야 착한 놈이 생기는 것이 때문이다. 작가의 입장에서는 선과 악의 구도가 명백해야 스토리 전개가 쉽기도 하다. 그러나 나이를 들어가며 삶, 행복, 사랑 등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부터일까.


요즘 드는 생각은 '대마왕의 세계 정복, 그 이후의  삶은 무엇일까'란 고민을 많이 한다. 모든 인간들 위에 군림하여 세계를 정복하고 나면 다음에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세계를 지배하는 왕이 된다면 맛있는 음식을 매일 먹기, 좋은 휴양지에서 휴가 보내기, 자신보다 아랫사람 괴롭히기,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기 등 이 정도가 생각해낼 수 있는 정도인 것 같다. 모든 인간의 최종적인 목표는 결국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방법으로 행복을 추구할 것인지에 대한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내가 찾은 행복의 비결은 '행복은 강도가 아닌 빈도이며, 따라서 소소한 일상을 어떻게 잘 보내느냐가 전체의 삶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피콜로도 결국 행복을 찾은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세계 정복이란 말을 내뱉지 않는다. 퉁명스러운 말투지만 생각 외의 다정다감한 모습으로 누구보다 손오공의 아들 오반을 아끼는 말과 행동을 보여준다. 어릴 적부터 봐온 오반이 잘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에게는 소소한 행복이지 않았을까.


더 많은 인물들의 삶에 주목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3인이었다. 물러날 때를 아는 용기, 돈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기, 행복해지는 법을 알려준 인물들이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책을 추천할 때 그 책이 자신의 격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 읽어보지도 않는 어려운 책이나 의미를 알기도 힘든 고전을 소개시켜줄 때가 있다. 그것이 자신의 격을 높이는 행위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나는 과감히 <드래곤볼>을 추천한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때는 항상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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