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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도쿠 Feb 14. 2020

형의 마음은 그런 것 같다

두 살 터울의 동생이 있다. 동생도 어느새 서른을 목전에 둔 나이이지만, 형의 눈에는 여전히 어리게만 느껴진다. 동생을 가진 모든 형, 누나, 언니, 오빠들의 마음이 다 이럴까. 아직까지도 어렸을 적 그 모습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아서인지, 동생은 언제까지고 돌봐줘야만 할 것 같은 대상이다. 같이 자라면서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고 나서 더 이상 싸우지 않게 된 것 같다. 물론 몸으로.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사소한 것으로 마음 상하기도 하고, 별 것 아닌 것에 성내면서 의견 차이를 보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우애는 좋다. 동생은 평소 내가 하는 말을 잘 따르는 편이며, 나한테 형이라는 이유로 양보하는 측면이 많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동생도 직장인이다. 가끔 회사생활에서 속상한 일을 내게 털어놓을 때가 있다. 상사와 있었던 일, 연구가 생각만큼 되지 않던 일, 회사의 미래와 직무에 대한 고민을 듣고 있노라면 고생이 많다는 생각과 함께 기특하다는 생각도 든다. 사회인으로서 본인의 몫을 잘 해내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동생은 언제나 나보다 2년 늦다. 평생 죽을 때까지 그 사실만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대학생활, 군대, 취업 등 내가 걸어온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오고 있다. 분명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쉽지만은 않았는데 내 눈에 마냥 어려 보이는 동생이 묵묵히 잘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에 가끔 신기할 때도 있다.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나는 일곱 살, 동생은 다섯 살이었다. 당시 집에서 도시락을 싸올 때였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도시락을 공유하며 점심을 먹고 있었다. 친구가 자기 돈가스를 먹으려면 시금치도 한 입 같이 먹어야 한다고 해서 억지로 시금치를 입에 넣고 있을 때였다. 그때 갑자기 동생이 울면서 우리 반에 들어왔다. 같은 반 친구한테 맞고 나서 나를 찾아온 것이다. 동생이 울음을 안 그치고 자꾸 울고 있으니 선생님이 형 옆에 있으면 괜찮을까 싶어 내게 데려다준 것이었다. 동생이 우는 것을 한 두 번 본 것이 아닌데 (물론 나 때문이 가장 많았을 것이다) 누구에게 맞고 왔다고 하니 괜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누구에게 크게 화를 내는 성격도 아니었던 내가 동생 손을 잡고 당장 그 반을 찾아갔다. 눈을 희번덕거리며 동생을 때린 친구를 찾았다. 그리고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혼내주었던 기억이 있다.


형의 마음이 그런 것 같다. 내가 당하는 것보다 동생이 당하면 더 마음이 아프다. 초등학생 때 컴퓨터 학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와 동생은 서로의 맞은편에서 컴퓨터를 배우고 있었다. 그때 내 또래로 보이는 어떤 학생들이 오더니 내 동생에게 물었다.


"너 어디 살아?"


내 동생을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 앞에 있는 ㅇㅇ아파트에 살아."


그랬더니 한 학생이 말했다.


"가난한가 봐. 엄청 꾸진 아파트에 사네."


내 동생은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맞은편에서 그 얘기를 들었던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슴 한편이 저렸던 기억이 있다. 당시 우리 가족이 살던 아파트는 그 주변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였고 우리 집이 풍족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너무 정확한 사실을 얘기해서 말문을 잃었던 것 같기도 하다. 만약 내가 저 말을 들었다면 그냥 흘러 넘겼을 것이다. 지금까지 기억할 만한 일은 아니니까. 그런데 눈 앞에서 동생이 저 말을 들은 것은 달랐다. 아픔, 분노, 당혹감 무어라 뚜렷이 말할 수 없는 감정인데 형으로서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무력감은 아직도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 받으면서 자란다. 내가 받은 상처만큼이나 동생도 받으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비는 누구 머리 위에나 내리는 법이다. 결코 누구만 피해서 내리진 않는다. 형의 마음은 그런 것 같다. 항상 티격태격하고 무뚝뚝하게 대화를 주고받으면서도, 막상 동생의 머리 위에 비가 내린다면 막아주고 싶다. 내가 더 젖더라도 동생은 조금 젖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형이기 때문이다. 그게 형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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