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석도쿠 Jan 12. 2020

존재란 누군가의 세상을 뒤흔드는 법

친척 한 분의 결혼식이 끝나고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내게는 조카가 되는, 이제 다섯 살이 되는 사촌 누나의 아들이 장난감을 손에 쥐고 이리저리 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변신하는 로봇 장난감인데 요즘 아이들한테 인기 있는 장난감이라고 한다. 사촌 누나는 한숨을 푹 쉬면서 요새 아이가 저 장난감을 어딜 가든 절대 손에 놓지 않는다고 했다. 집에서도, 유치원에서도 저 장난감을 계속 갖고 다니니 나름 고민이랜다. 억지로 떼어놓으려고 하면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으니 함부로 떼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밥 먹을 때도, 잘 때도 계속 장난감을 끼고 다닐 아이를 생각하니 걱정거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결혼식장에는 조카 또래의 한 여자 아이가 있었다.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인상적인 아이였다. 아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의식한 듯 눈을 몇 번 마주치는 모습이 보였다. 내 조카는 품에 로봇 장난감을 끼고 여자 아이 주변을 맴돌았다. 그렇게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더니 여자 아이에게 장난감을 주는 것이 아닌가. 엄마나 아빠는 물론이며 그 누구에게도 주지 않던 장난감을 처음 본 여자 아이에게 넘긴 것이다. 여자 아이는 장난감을 받더니 이리저리 움직여보다가 바닥에 떨어트렸다. 내 조카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았다. 조용히 장난감을 다시 줍더니 여자 아이에게 건넸다.


세상의 전부와도 같았던 장난감을 건넨 조카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조카가 건넨 것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의 중심이 장난감에게서 여자 아이에게로 옮겨간 것을 의미했다. 존재란 원래 세상을 뒤흔드는 법. 눈망울이 똘망똘망한 그 아이는 그렇게 누군가의 세상을 뒤흔들어 놓았다.


우리는 사랑을 매우 특별한 무언가로 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단순히 누군가가 좋아서 내게 소중한 것을 상대에게 주고 싶은 마음 정도로만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세상을 5년째 살고 있는 조카의 세상은 또 다른 존재의 출현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에 대한 근사한 정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