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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도쿠 Feb 14. 2020

문득 사랑이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사랑이 하고 싶을 때가 있다. 향기나 냄새라고 표현하기에는 조금 모호한 겨울 공기가 코 끝에 닿을 때, 특별한 것이 없는 일상의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유독 쓸쓸하게 느껴질 때,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정말 정말 사소한 일인데 시시콜콜 이야기하고 싶을 때. 문득 사랑이 하고 싶을 때가 있다.


평소 외로움을 타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인간인 이상 언제까지나 외롭지 않을 수 없다. 어제와 똑같은 일상에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지만 어제와 오늘의 마음이 다른 것이 인간이다. 코 끝에 닿은 공기가 유달리 춥게 느껴지는 것은 하나의 신호이다. 이제 곧 외로움이 밀려들기 시작하니 어서 대비를 하시오 같은. 밀려드는 외로움에 유일한 대안이 사랑은 아니다. 생각보다 대처할 수 있는 방파제는 많다. 그러나 사랑으로 막아보고 싶다.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 우산을 써서 비를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이왕이면 빨간 우산을 쓰고 싶은 것뿐이다. 조금 설레고 열정적이고 타오르고 싶다. 언젠가부터 심장이 죽었다. 쉽게 뛰지 않는다. 사랑에 대한 낭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랑을 책으로 배워서 그렇다. 정말 책으로 배웠다. 심리, 역사, 철학, 생물학 등 생각보다 다양한 서적을 읽었고 나름대로 사랑을 정의했다. 그러나 그 정의에 흠이라면 이상적이면서 이성적이다.


가슴이 뛰는 것은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 단순한 호르몬 분비의 영향일 수도 있다. 호르몬이 심장 박동을 촉진해서 빨리 번식을 이루게 하려는 유전자의 음모일 수도 있다. 그래서 진짜 사랑은 오히려 설렘이 사라지고 나서 편한 감정으로 관계를 맺어가는, 그때부터 진짜 사랑의 시작은 아닐까란 생각도 한다.


사람은 저마다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는 태고적부터 매우 달라 이질적이다. 섞이기 힘든 두 세계를 붙여 놓으니 다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상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게 사랑일 수도 있다.


사랑은 서로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일 수도 있다. 서로가 좋은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사랑을 통해 여기저기 좋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이제 둘의 관계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 마음이 둘의 관계를 넘어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도 있다. 사랑이 또 다른 사랑을 낳는 것이다.


사랑은 이런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특별한 고민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적었을 뿐이다. 그래서 사실 큰 의미를 지니고 있지도 않다. 좋은 사랑을 고민했지만 고민에 앞서 시작이 중요하다. 좋은 사랑에 맞춰 상대를 찾기보다는 좋은 상대를 찾아 사랑을 맞춰나가고 싶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어디 내게로 밀려올 사람 없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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