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석도쿠 Mar 05. 2020

그의 존재 자체를 응원한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울컥하게 만드는 한 친구가 있다. 그의 인생은 마치 세상의 온갖 불행을 다 모아놓은 것만 같다. 그는 최초의 기억이 4살 때 아버지에게 뺨을 맞은 기억이라고 한다. 밥을 먹는 도중 반찬 투정을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의 술주정뱅이였고 노름을 즐겼다. 비정한 세상과 무능한 자신에 대한 분노는, 그런 사람들이 대체로 그러듯 항상 폭력이란 이름으로 가족에게 향했다. 어머니는 그런 남편을 견디지 못하고 일찌감치 집을 떠났다. 친구는 어린 시절부터 하나뿐인 여동생과 함께 두려움에 떨며 지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가끔 용돈을 쥐어주기도 했지만, 대체로 분노를 표현하는 일이 많았다. 하다못해 초등학교까지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곤 했다. 담임선생님이 말리는 상황이 되고 학급 친구들은 그런 상황을 신기한 듯이 쳐다보았다. 그 무렵 기초생활수급대상자는 항상 친구를 따라다니는 꼬리표였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가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 가지 나은 점이 있다면 친구가 알바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신문 배달, 막일, 주유소 등 온갖 알바를 하면서 여동생과 함께 쓸 수 있는 생활비를 마련했다. 그 돈으로 아버지를 떠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친구는 공부를 놓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줄곧 우등생이었다. 항상 새벽 3시 30분에 기상했다. 5시가 되면 알바를 하러 가야 했기 때문에 유일하게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그 사이 1시간 반이었다. 7시에 알바가 끝나면 8시까지 바로 학교로 향했다. 수업이 끝나면 또다시 알바를 하러 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하굣길에 학원에 가거나 부모님이 데리러 오는 학급 친구들이 부러운 마음은 없었다고 한다. 그 마음마저 사치라고 생각했기에 기계처럼 공부와 알바에 몰두했다. 그렇게 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차곡차곡 모은 돈이 700만 원 정도 되었다.


한 때는 너무 힘들어서 가출을 한 적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마냥 서울역으로 갔다. 길거리 노숙은 서울역이 제일 많다는 얘기를 얼핏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아무 자리에나 신문지를 깔고 누웠다. 그런데 갑자기 한 노숙자가 오더니 친구를 때렸다. 영문도 모르고 친구는 맞았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이유는 자기 자리를 함부로 침범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3일 정도 생활하다가 우연히 행방을 알게 된 담임선생님이 찾아와서 간곡한 설득 끝에 다시 학교로 복귀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고 수능도 좋은 점수를 받아서 다행히 서울에 이름 있는 대학교의 장학생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좋은 대학의 입학만으로는 인생이 확연히 변하진 않았다. 또다시 공부와 알바를 병행하는 기계 같은 대학생활을 보냈다. 그러던 중,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조문객도 거의 없는 쓸쓸한 장례식이었다. 장례 비용은 친구가 어렵사리 모은 돈 전부를 토해내서야 겨우 지불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동시에 슬펐다.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똑같은 가정학대를 받아온 여동생은 친구만큼 강하지 못했다. 친구는 본인의 생활에 치여 그녀에게 큰 관심을 주지 못했고 그녀는 무관심 속에 방치됐다. 그녀는 여린 사람이었다. 하나뿐인 여동생은 두 차례 자살 시도를 했고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 무렵, 만나던 여자 친구가 있었다. 함께 하는 미래를 생각해도 좋을 사람이었다. 그러나 만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여자 친구의 아버지가 그를 찾아왔다. 친구의 가정사를 우연히 들었고 우리 딸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그만 만나라고 얘기했다. 그렇게 이별했다.


친구는 흔들리지 않았다. 대학 생활 내내 장학금을 받았고,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했다. 그리고 지금은 월 매출 2억을 올리는 어엿한 사장님이 되었다. 치열하게 살아왔음에도 내가 아는 누구보다 순수하다. 언제나 웃는 얼굴이다. 성격에 모가 날 법도 하지만 나랑 알고 지내면서 화를 내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그건 동화 속에서나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뚫고 마지막에는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현실은 항상 냉혹하다. 노력과 보상이 상관관계는 있어도 결코 정비례하지 않는다. 또한 고난과 역경이 있었다고 해서 꿀맛 같은 결과가 따라오지도 않는다. 얼마 전,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공장 화재, 민사 소송, 대리점 분쟁, 코로나 19 등 온갖 악재가 한순간에 겹쳐 사업은 망했다. 그 와중에 친구는 웃었다. 웃음이 나오냐. 바보 같았다. 그러나 대단했다. 어떤 순간이든 정말 웃음을 잃지 않는 친구였다.


처음부터 마이너스로 시작한 인생이다. 잠시 플러스가 되었지만 지금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친구는 마이너스가 아닌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했다. 그는 다시 또 처음부터 시작하고 있다.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마냥 잘 될 것이라는 말은 현실성이 없다. 그러나 그는 존재만으로도 내게 위안이 되는 사람이다. 내가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것에 얄팍한 안도감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나는 그를 응원한다. 세상의 온갖 핍박에도 굴하지 않는 유일무이한 그의 존재 자체를 응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대는 별이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