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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도쿠 Apr 17. 2020

무언가를 상상하는 일이 줄었다

시간이 갈수록 아는 것은 많아진다. 그러나 상상하는 능력은 줄어든다. 언제부턴가 새로운 것을 상상하지 않는다. 상상보다 현실이 더욱 무섭게 눈 앞에 다가와서일까. 그냥 하루하루 주어지는 현실만 살고 있는 느낌이다. 그 현실은 따분하지만 안정적으로 흘러간다. 새로운 것을 상상하는 데 필요한 결핍이 없어서일까. 지금 당장 아쉬운 게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떠올리지 않는 것일까. 


예전의 나는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무언가를 쳐다보며 멍하니 있는 일이 많았다. 가만히 있는 것이 지루하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쳐갔다. 한없이 상상을 펼칠 때는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문득 소리가 들려 대답을 하고 나면, 이미 상대방이 몇 번을 부른 후였다. 그만큼 상상에 깊이 몰입했고 생각하기를 좋아했다.


중학교 때부터 열심히 소설도 썼다. 글솜씨는 그리 볼품없었지만, 머릿속 다양한 상상을 현실로 풀어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때는 정말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소재였고, 언제나 세상을 바라보면 소재가 무한히 나왔다. 그래서 매사 심심하지 않았다. 보는 것 그 자체가 즐거움이었고, 취미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쉽게 지루함을 느낀다. 짧은 순간의 심심함을 못 이기고 스마트폰을 든다. 스마트폰을 볼 때는 더 이상 상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잡다한 콘텐츠를 통해 다양한 지식을 습득한다. 쉽게 잊힐 지식 같기도 하지만, 잡상식이 늘어간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지식의 스펙트럼이 넓어졌으니 나름의 성장이라면 성장이다. 그러나 내가 상상하던 모든 시간이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으로 대체되었다.


내가 상상하지 않는 이유는 회사 일도 한몫한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는 분명 창의적인 인재를 원한다고 했다. 면접 때는 특별히 고안된 창의성 면접도 보았다. 어떤 상황이 주어지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여 대답하는 것이었다. 내가 얼마나 창의적인 사람인지를 어필했고 운 좋게 합격했다. 그러나 회사에 들어온 이후, 모든 창의성은 죽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하루, 데이터와 수치만으로 결정되는 모든 업무, 위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하위 부서로 내리는 수직적 조직문화.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회사생활은 결코 창의성이  나타날 수 없는 나날이었다.


상상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어쩌면 앞으로도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인생에서 상상력이란 필수 불가결한 요소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는 확실히 단언할 수 있다. 상상하지 않으니 삶의 재미가 줄었고, 생각하지 않으니 삶의 흥미가 줄었다. 언제부턴가 재미없는 삶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예전에는 분명 세상을 바라보면서 소재를 찾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을 바라보면서 소재를 찾는다. 바라보는 대상이 바뀌었을 뿐인데 나의 세상은 크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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