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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도쿠 Apr 26. 2020

기다림의 낭만

김광진의 노래 <편지>를 아는가. 그 노래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김광진은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는 김광진의 불투명한 미래가 탐탁지 않아 둘 사이를 반대했고, 둘은 어쩔 수 없이 이별하게 된다. 그녀는 부모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선을 보게 된다. 선에서 만난 남자는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했고, 성심성의껏 아껴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김광진을 잊을 수 없어 괴로워하고, 남자는 결국 그녀를 놓아주기로 결심하면서 홀로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그때 마지막으로 자신의 진심을 담은 편지를 그녀에게 전하게 되는데 그 편지를 바탕으로 만든 노래가 바로 <편지>이다. 김광진은 자신의 여자를 사랑한 남자의 이야기지만 그 편지에서 남자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진정 행복하길 바라겠소 이 맘만 가져가오.


찬찬히 노래를 듣다 보면 마음에 와 닿는 가사들이 있다. 우리는 억지로 인연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가. 이별한 상대방이 불행하길 빌어주지 않는가. 한때 사랑했던 연인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이 인상 깊게 와 닿는다. 물론, 실제 인물의 감정이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분명 그 시절만의 사랑에 대한 낭만이 있다는 것이다. 상대가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아도 기다릴 수 있었고, 나를 떠난다고 하더라도 행복을 빌어주는 것은 실로 굉장한 낭만이다.


세기말 감성이라고 표현하듯이 그때 그 시절 노래는 지금과 많이 다르다. 기술 발전에 맞춰 사람의 생활습관과 치관이 변했기 때문이다. 임을 생각하는 황진이의 마음이나 화가 이중섭을 기다리던 마사코의 마음은 이제 없다. 사랑의 기본 속성이 기다림이라는 것은 옛말이다. 이제는 카톡이 바로 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사랑을 기다리지 않는다. 사랑이 오지 않을 때 기다리는 대신 다른 사랑을 찾는다. 낭만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시대에 맞춰 사랑의 모습도 변화하고 있는 것뿐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잠시의 기다림을 용납하지 못한 채 사랑이 식었다는 신호로 인식이 될 때이다. 사랑은 오래 머물면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 사람을 부모님으로 꼽지만, 부모님과 모든 일상을 공유하지 않는 것과 같다. 실시간으로 모든 것을 주고받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간과 공간의 여유를 두고 기다림의 낭만을 즐겨보는 것도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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