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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도쿠 Jan 29. 2021

엄마와 무협드라마를 보다?

[의천도룡기 2019 포스터]

요새 푹 빠진 드라마가 있다. 바로 <의천도룡기 2019>이다. 의천도룡기는 기존에 있던 무협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드라마이다. 중국에서 신필(神筆)이라고 불리는 작가 '김용'의 작품이기도 하다. 중, 고등학생 때 무협소설을 워낙 좋아했었다. 절세무공으로 무림을 맘껏 누비며 불의에 굴하지 않고 의협을 행하는 주인공들이 멋있게만 보였다. 심지어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소림사에 들어가서 무술을 배워볼까란 생각도 했다.


넷플릭스를 뒤적거리던 중, 우연히 <의천도룡기 2019>를 발견했다. 특히, 한 방송에서 어떤 연예인이 좋아한다고 난리 났던 중국 배우 '축서단'이 등장하는 작품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상당한 미모의 중국 연예인이었다. 오랜만에 추억도 회상하고 배우에 대한 궁금증도 해결할 겸 1부를 실행했다. 분명 오후 1시부터 보았는데 시계를 보니 어느덧 8시. 그 사이 10부작 넘게 연달아 보았다.


[중국 배우 축서단]

너무나 흥미진진했다. 이미 알고 있는 줄거리임에도 전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소설 속 개성이 넘치는 등장인물들을 그대로 스크린 판으로 잘 옮겨놓아서 마치 실제로 해당 인물이 존재할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만큼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드라마가 재밌어서 브런치에 글로 남기는 것은 아니었다.


더 흥미진진했던 것은 드라마를 보는 내내 엄마와 함께 했다는 것이다. 엄마는 드라마를 좋아하지만 무협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게다가 이렇게 TV를 오래 보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 옆에서 한 편씩 보기 시작하더니 우리는 7시간이 넘도록 함께 했다. 소파에서 전혀 꼼짝도 하지 않고 말이다. 아버지도 중간에 한 번씩 동참했으나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나는 평소 드라마를 많이 보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오랫동안 드라마를 볼 일은 잘 없었지만 특히 엄마와 함께 보는 일은 더 없었다. 엄마는 몇몇 부분이 이해가 안 간다고 물었다. 무협의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었다. 내공, 주화입마, 문파 등 무협에서 나오는 용어들부터 시작해서 친절하게 하나씩 가르쳐주며 우리는 드라마에 더욱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드라마 메이트가 되었다. 총 50부작이나 되는 드라마를 한 번에 정주행 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최근 일주일 동안 퇴근 후, 시간을 맞추어 하루에 2편씩 보고 있다. 엄마와 무협 드라마를 본다는 것은 매우 낯선 경험이었다. 엄마에게 무협에 대한 내용을 설명해주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엄마는 아들과 더 살갑게 지내기 위해서 일부러 그러는 것 아닐까. 가끔씩 옆에 아버지가 합류하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나는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이 별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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