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에서 웃음소리가 들리길래 슬쩍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부모님은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보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요새 가장 애정하는 아이는 '하영이'다. 말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보다 보면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핀다. 어쩜 저렇게 귀엽지 생각하다가 문득 시선을 돌려 부모님을 보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발을 주무르고 있었다. 사실 익숙한 광경이다. 어머니는 오랜 경력의 산부인과 간호사로 많은 환자들을 관리하기 때문에 병원 내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발이 붓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매일 밤 항상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의 발을 주무른다. 아버지의 손은 쉬지 않는다. 엄마가 '그만'이라고 할 때까지 멈출 수 없다.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어머니의 눈꺼풀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피로감을 없애는 시원한 손맛을 이기지 못하고 어느새 잠들어 있다.
아버지에 비해 어머니가 아깝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버지에게는 참 죄송한 얘기이지만 외모나 성격, 그리고 경제적 능력까지 어머니가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사업도 실패하고, 주식으로 돈도 날려먹고, 친구에게 빌려준 돈은 돌려받지도 못했다. 성격이라도 조용하면 모를까. 목소리 크고 쉽게 흥분하는 성격의 사나이다. 결코 쉽지 않은 성격을 가졌다. 그런 아버지를 감싸주고 함께 가정을 이끌고 온 어머니는 너무나 대단해 보였다.
언젠가 이 얘기를 어머니한테 한 적이 있다. 그때 어머니가 말하길, 그래도 아버지는 다른 곳에 한 눈 팔지 않고 가정에 헌신적이지 않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덧붙이길, 만약 어머니 자신이 나중에 치매라도 걸렸을 때 아무런 불평 없이 곁에서 오랫동안 묵묵히 자신을 보살펴줄 만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갑자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했다. 아버지는 분명 그럴만한 사람이다. 올곧은 성격이 주변을 귀찮게도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절대 회피하지 않는다. 한 번 행한 것은 끝까지 행하는 사람이다. 지금이나 나중이나 어머니에게 헌신적일 것이다.
어머니에게 다시 말했다. 엄마가 아깝다고 말한 거 취소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