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어린아이들을 볼 때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고민 없이 마냥 해맑게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굳이 돈을 벌기 위해 일을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되고,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으며, 치솟는 집값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냥 먹고 자고 온전히 세월을 견디는 일만 잘하면 될 것이었다. 그런데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육아 프로그램을 보면서 생각이 정말 달라졌다.
어린아이들은 누구보다 예민하고 힘들었다. 겉으로만 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행동들도 나름의 힘듦을 이유로 하고 있었다. 어리다는 이유로 먹고 자는 것만 충족되면 모든 것이 완벽할 것이란 생각은 터무니없었던 것이다. 성인의 세계는 넓고 넓어서 신경 쓸 것이 있어도 그것이 세계의 전부를 의미하진 않는다. 그러나 아이의 세계는 부모가 세계의 전부를 의미한다. 부모의 행동에 따라 아이는 세계 전체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직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세계는 쉽게 흔들리기 마련이다. 흔들림은 곧 불안이다.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가끔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이가 감내하는 힘든 삶이 우리 마음속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공감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모두가 그런 시기를 견디어 지금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아이의 삶도 결코 쉽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잊어버린 어린 시절의 기억과 성인의 잣대로 과거를 판단했던 오만이 어린 시절을 편하게만 생각했던 것이다.
어린아이를 부러워했던 이유는 지금의 삶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뿐만 아니라 어린아이 때도 삶은 쉽지 않았다. 나중에는 쉬워질까. 아닐 것이다. 노인의 삶을 보노라면 결코 쉽지 않다. 인생을 오래 산 만큼 큰 교훈을 깨닫고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 같지만, 그것은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듯하다. 특히 대한민국은 OECE 중 노인 자살률 1위, 노인 빈곤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이다. 통계를 보면 노인의 삶은 더욱더 처절하게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종합하면 어릴 때도, 지금도, 나이 들어서도 삶은 언제나 어렵다. 불교에서는 일체개고(一切皆苦)라는 말이 있다. 쉽게 말하면 모든 것이 고통이란 뜻이다. 삶이란 원래부터 고통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행복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착각할 때 우리는 크나큰 좌절을 겪는다. 다른 사람은 모두 행복한데 나만 이렇게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언가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과 억울하다는 감정이 차오른다. 하지만 삶이 고통 속에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하다. 모든 이가 자신만의 고통이란 짐을 지고 있으며, 삶이란 그것을 견디어 내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고통을 완화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행복과 사랑, 그리고 돈과 사람 등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사실 고통을 잊게 하는 마취제 같은 역할을 한다. 한 번의 행복이 영원하지 않으며, 그 어떤 뜨거운 사랑도 평생을 가지 않는다. 돈으로도 결코 채워질 수 없는 부분이 있으며, 사람도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나기 마련이다. 마취가 풀리면 내 삶은 다시금 상실과 아픔으로 점철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단단해진다는 것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배우는 속담이지만, 인생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말이기에 어릴 때부터 가르쳐주는 것이다.
굳어져도 또 갈라지고 부서지겠지만 그럼에도 다시 굳어지는 순간이 온다. 그렇게 고통과 회복을 반복하면서 우리는 또 살아간다. 삶의 의미는 누구에게도 특별히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제각기 멋진 것으로 삶의 의미를 정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한 번 멋지게 정해보시길.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존재여,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