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허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외로움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것과는 살짝 결이 다르다. 혼자 있거나 홀로 있는 듯한 느낌이 아닌, 그냥 모든 일들이 무미건조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비 오는 날 밖에 풍경을 보아도, 검성 넘치는 노래를 들어도, 감동을 자아내는 소설을 읽어도 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일정한 주기로 한 번씩 그러한 때가 찾아온다.
언젠가부터 삶은 그냥 묵묵히 견뎌내는 것이란 철학이 생겼다. 사는 동안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생물의 본능은 결국 생존과 번식, 그중에서도 생존이 더욱 앞선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나는 생물로서 바람직한 방향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영화를 볼 때 그 영화에 대한 감상평은 영화를 끝까지 본 후에야 할 수 있다. 중간까지만 보고 결론을 내는 감상평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인생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마지막에서야 인생평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100세 인생이라고 보았을 때 반환점도 돌지 않은 시점에서 당장 어떤 결론을 내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처럼 보인다.
인생이 어떠하였다는 평을 내리기 위해서 결국 끝까지 살아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생존을 가장 우선가치로 생각하게 된다. 그럴 때 좋은 점은 일단 사는 것이 먼저이니 삶에 어떠한 고난이 닥쳐도 살아있는 것에 무한한 감사를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마음이 허하다고 느껴지는 때에도 이 순간만 지나가면 또다시 새로운 감정들이 가득 차는 시기가 올 것이란 것을 안다. 모든 것이 순환하고 반복하듯, 인간의 마음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것은 떨어져 있는 듯 보여도, 결국 연결되어 있다. 전혀 다른 개념과 차원의 물질과 사건들도 생각하기에 따라 다른 곳에 적용할 수 있는 통찰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객관적 세계를 철저히 주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삶이 신비한 이유이다. 신비한 이것을 끝까지 살아내고픈 마음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