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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동 Jun 24. 2021

나를 키운 8할

얼음을 넣고 달달하게 탄 인스턴트커피를 보면 큰언니가 먼저 생각난다. 

    

고3이 되어 아침 일찍 집을 나설 때면 큰언니는 도시락 두 개와 함께 얼음을 동동 띄운 차가운 냉커피를 내밀었다. 큰언니의 냉커피는 잠을 깨우는 건 물론이고, 달콤하고 진해서 오래도록 입안에 맴돌아 기분 좋게 했다.

여느 집이라면 엄마가 할 법한 이런 일들을 우리 집에선 큰언니가 대신했다.     


엄마가 멀리 타지에 나가 일하시고, 할머니 손에 이끌려 국민학교에 들어갈 때도 나를 앉혀서 글자를 가르친 것도 큰언니였고, 국민학교 첫 시험을 앞두고 나를 옆에 끼고 공부를 시킨 것도 큰언니였다. 

그 당시 난 여러 여건에서 아이들의 놀림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누구나 보면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차이가 나는 짝눈에다가, 집안 형편 때문에 멀리 타지에서 일하는 엄마의 부재로 한동안 난 엄마 없는 아이로 컸다. 

큰언니는 혹여 그런 것들로 인해 내가 천덕꾸러기나 놀림감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나를 그렇게 끌어안고 가르쳤는지도 모르겠다. 자기도 겨우 중학생에 불과하면서…….     


교육열이 남달라서 아이들을 도시로 유학 보내는 다른 집들과 달리 우리 부모님은 교육열이 그다지 높지도 않았고, 도시에서 아이들을 공부시킬 만한 형편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내를 시골에 혼자 두면 안 된다고, 부모님을 설득해서 나를 도시로 전학시킨 것도 큰언니였고, 그런 우리들의 살림을 맡아주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그걸 전적으로 도맡아서 다 꾸려 나갔던 사람도 큰언니였다.      


“선수, 사이다에 관심 두지 마라!”

“스님, 잿밥에 신경 쓰지 마라!”

큰언니는 새로 산 내 공책이나 연습장 위에 이런 말을 써주곤 했다. 공부에 전념하라는 큰언니의 간절한 마음이었다. 난 그것에 그리 잘 부응하지 못했고, 한참을 돌아서 내 길을 찾아왔다.     


큰언니는 내 인생 마디마디에서 나를 가르치고, 이끌고, 그늘을 만들어 주고, 비빌 언덕을 대주면서 나를 키워냈다.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고, 중년의 나이가 되어 되돌아보니, 큰언니가 내게 했던 일들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나를 키운 8할은 우리 큰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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