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난 유난히 감을 좋아했다. 아마 우리 집에 있었던 유일한 과수나무가 감나무뿐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에는 감나무 두 그루가 있었는데, 하나는 집으로 들어서는 길섶에 다른 하나는 뒤란 쪽 작은 도랑물이 내려가는 수돗가 옆에 있었다. 길섶에 있는 감나무는 꽤 컸고, 수돗가 쪽 나무는 작았다. 큰 감나무에선 감이 많이 열렸지만, 알이 잘고 해거리가 심했다. 그에 비해 작은 나무는 듬성듬성 몇 개 달리지는 않았지만, 알도 크고 해거리도 유난스럽지 않았다.
해거리하는 감나무는 중간이 없었다. 올망졸망 늘어지게 달린 감 때문에 가지가 휘어질 정도였다가 이듬해는 한눈에 다 헤아릴 정도로 드문드문 열렸다.
감이 얼마 열리지 않는 해는 제사나 차례에 쓸 곶감을 깎느라 우리가 맛볼 기회도 없었다. 알이 잘아도 많이 열리는 해는 우리에게 돌아오는 게 많았다. 그런 해는 감을 삭혀 먹었다. 떫은 생감을 따서 커다란 독에 미지근한 소금물 함께 넣고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을 덮어 며칠을 두면 감이 삭히면서 검붉게 변했다. 색깔은 그리 먹음직스럽지 않지만, 맛은 아주 좋았다. 떫은맛은 다 사라지고 단맛이 났다. 아삭하고 달콤하게 삭힌 감은 감이 많이 열리는 해에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었다.
누가 뭐래도 감 중 으뜸은 단연 홍시다. 감나무에서 저절로 홍시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빼먹는 것은 감질났다. 어쩌다 잘 걸려도 장대로 홍시를 빼는 일은 만만찮았다. 삐끗해서 흙바닥에서 터진 홍시를 볼 때면 그 안타까움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서리를 맞고 난 감은 좀 달랐다. 손에 잡히는 감을 따서 손으로 조금만 조몰락거려도 금세 말랑해지니까.
내 손이 닿을 만한 곳에 주황빛 도는 감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즈음이면, 볼일 보는 일도 함께 없어졌다. 배가 너무 아파 변소에 가도 일이 해결되지 않았다. 급기야 할머니가 꼬챙이로 거기를 쑤셔야 했다. 배가 아파 고생을 할 때면 감을 그만 먹어야겠다고 결심하지만 그건 그때뿐이고, 얼마 못 가서 또 거기가 막히는 일이 생기곤 했다.
손으로 눌러 억지로 만든 홍시는 껍질도 두껍고, 속살의 결도 두텁고, 다 먹고 나면 텁텁한 기운이 입안에 남았다. 그러나 저절로 된 홍시는 좀 달랐다.
서리 맞은 붉은 감을 따서 채반에 가지런히 놓은 다음 차가운 광에 두면 저절로 말랑말랑한 홍시가 되었다. 그때의 홍시는 색도 진하고 고울 뿐 아니라 껍질도 아주 얇았다. 그런 홍시는 항상 날 유혹했지만, 먹고 싶다고 아무 때나 마음대로 꺼내 먹을 수는 없었다. 광은 언제나 자물쇠로 채워져 있을 뿐만 아니라, 감이 담긴 채반은 높은 시렁에 얹혀 있었다.
추운 겨울날 광에서 금방 꺼내 온 홍시에는 찬 기운이 가득 스며 있었다. 얇은 비닐 막 같은 껍질을 벗겨내고 선홍빛의 고운 홍시를 한입 가득 베어 물면 촉촉하고 탱글탱글한 달콤함이 차가운 광의 기운과 함께 입안으로 들어와 살살 녹았다. 내복 바람으로 먹다가 몸이 움츠러들어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가기도 했다.
가끔 이불을 뒤집어쓰고 먹다가 호되게 꾸중을 들었다. 감물이 베이면 거무튀튀하게 얼룩이 져서 몹시 지저분하고 더러워 보였다. 감을 좋아한 덕분에 내 옷들은 못나게 얼룩진 게 많았다. 매번 잔소리를 듣지만, 아무리 조심히 먹어도 어느새 내 옷엔 감물이 들고 말았다.
시렁 위에 차곡차곡 올려진 홍시가 다 없어질 때쯤이면 봄이 다가왔다. 홍시는 그렇게 추운 겨울과 함께 사라졌다.
내 고향에는 여전히 감이 익어가고 있다. 그 감이 그때와 다르게 느껴지는 건 그저 내가 나이 든 탓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