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탱동 Jun 28. 2021

닭 먹는 날

우린 이제 닭고기이란 말보다 치킨이란 말에 더 익숙하다. 다양한 조리법과 맛을 골라 먹는 재미까지 더해져서 치킨은 이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 인기 음식 중 하나다.

누군가는 퇴근길 아버지 손에 들린 노란 봉투에 담긴 통닭이 추억의 음식이라 말했다. 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탓에 그들의 얘기에 공감하지 못했다.    

 

“♪♫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대♬♩”

꼬마 똑순이가 텔레비전에 나와 노래 부를 때면 난 산타할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몰랐지만, 똑순이가 사는 도시에 살겠거니 여겼다. 생전 듣도 보도 못했으니까.     

그렇듯이 누군가의 추억은 다른 누군가한테는 너무나 동떨어진 얘기라서 장단 맞추기는커녕 고개조차 끄덕일 수 없을 때가 있다.   

   

내 어릴 적 닭고기는 노란 봉투에 담긴 튀긴 통닭과는 전혀 달랐다.

특별한 날, 장에서 닭 한 마리를 사 오면 아버지는 손수 닭의 배를 갈라 하나하나 다 꺼내서 일일이 손질했다. 그 앞에 앉아서 그걸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닭의 배 안에는 아직 알이 되지 못한 노른자가 들어 있기도 했고, 그것들은 크기도 다 달랐다. 모두 순서대로 알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는데……ㅠㅠ

가늘고 기다란 닭의 창자에 작은 칼을 안으로 쭉 밀어 넣으면 그것이 뒤집히면서 속의 것이 줄줄이 튀어나왔다. 흐물흐물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자면……ㅋㅋㅋ 마지막으로 둥근 닭똥집도 가운데를 갈라 속을 제거해 내면 내 속도 덩달아 개운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속을 다 들어낸 닭은 깨끗하게 씻겨 도마 위에 올라 앉았다. 숫돌에 갈아서 날카로워진 칼로 닭의 뼈와 살을 정교하게 분리했다.      


아버지의 닭 손질이 끝나면 이제 엄마 차례가 되었다.

뼈를 발라낸 닭고기를 잘게 썰고, 거기에 시래기, 토란대, 대파 같은 온갖 채소와 간장, 고춧가루, 마늘 등 갖은양념을 넣어 진하게 끓이면 온 식구가 맛볼 수 있는 한 솥 푸짐한 닭개장이 되었다.

닭개장에 밥을 꾹꾹 말아 한술 가득 떠 입안으로 넣으면 얼큰하고 진한 맛이 온 몸으로 퍼졌다. 그 맛은 어디에도 견줄 바가 못 됐다. 순식간에 한 끼 뚝딱이었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살을 발라낸 뼈는 장작불에 푹 고은 다음 불린 찹쌀을 넣고 끓이면 가족 모두가 또 한 끼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닭백숙으로 변신했다. 제대로 된 살점 하나 찾기 어려웠지만, 뼈를 장작불에 몇 시간 우린 국물에 끓인 죽이라 여느 흰죽과 달리 깊은 맛이 났다.

이 모든 걸 다 하고도 남은 똥집과 내장들은 아버지의 요긴한 술안주가 되어 작은 화덕 위에서 구워졌다.

    


닭 한 마리로 온 식구 몇 끼니를 해결하고 나서 고급진(?) 술안주까지 되었다는 그 시절 얘기는 ‘라떼’를 들먹이는 ‘꼰대’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특별한 날에 먹었던 그 닭고기 맛은 오늘 골라 먹는 치킨 못지않게 아주 맛있었다고!

이전 03화 텔레비전이 왜 그렇게 보고 싶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