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인데도 아버지는 벌써 쇠죽을 다 끓여놨고, 온 가족이 아침에 쓸 물까지 일찌감치 데웠다. 밤새 식어가던 구들방에 따뜻한 온기가 더해지면 이불 속으로 파고들며 웅크리던 몸은 느슨해지면서 다시 달콤한 잠으로 빠져들었다.
겨울이 다가올 무렵이면 아버지는 부엌 한쪽에 천장까지 닿을 만큼 높이 솔가리를 채웠다. 마당 한편에도 켜켜이 매듭지어 엮어놓은 솔가리가 가득했다. 겨울 땔감으로 솔가리만 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푸르던 솔잎들이 갈색으로 변해 낙엽이 되어 바싹 마른 솔가리가 되면 불에도 잘 붙고, 화력도 아주 셌다. 불을 다 때고 난 뒤에도 그 열기가 강하게 오래도록 남아서 긴 시간 방을 따뜻하게 했고, 붉은 기운을 품은 아궁이의 재에 고구마나 감자 같은 걸 구워 먹기에도 참 용이했다.
이런 요긴한 솔가리가 모든 집에 다 있지는 않았다. 부지런히 미리 준비해 두지 못한 집에선 타작을 끝낸 볏짚이나 콩대, 깻대가 겨울 땔감의 전부였다. 아궁이에 불을 한 번이라도 지펴본 사람은 안다, 볏짚이나 콩대의 화력은 솔가리에 그것에 견줄 바가 못 된다는 걸.
아버지는 볏짚을 땔감이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 아침을 물리고 나면 아버지는 볏짚을 깨끗이 추렴해서 방으로 가져왔다. 그건 겨울 소일거리의 시작이었다. 짚으로 새끼를 야물게 꼬아서 만든 부리망, 멱둥구미, 삼태기…… 아버지의 손을 통해 볏짚은 집안에 필요한 갖가지 유용한 물건들로 다시 태어났다.
짚으로 만드는 일이 끝나면 싸리나무를 엮어 채반과 소쿠리를 만들었고, 말린 억새를 묶어서 빗자루를 만들었다. 아버지가 만든 빗자루는 비질도 부드럽고 깔끔했다. 아무런 도구 하나 없이 오로지 손으로만 빚어낸 물건들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 정교하고 야무진 솜씨는 타고났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아버지께서 겨울 내내 만들어 낸 이런저런 기구들을 우리 집 곳곳에서 바삐 쓰였다.
방안에서 하던 일들이 얼추 다 끝나고, 햇살이 좋은 날이면 아버지는 마당으로 나와 진흙을 빚어 화덕을 만들었다. 아버지는 도대체 어디서 이런 걸 다 배웠는지 뚝딱뚝딱 잘도 만들어 냈다. 작고 소박한 화덕은 검은 숯을 넣고 불을 피워 소소한 것들을 구워 먹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비록 석쇠 위에 올라오는 것이 닭똥집이나 내장, 양미리 정도가 전부였지만.
아침밥을 먹기 바쁘게 시작된 아버지의 겨울 소일거리는 점심상이 나가고도 계속 이어졌다. 이런 아버지 곁엔 낡고 오래된 작은 라디오가 늘 함께했다. 오로지 한 주파수에 맞춰진 라디오는 누가 듣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종일 돌아갔다. 정시마다 나오는 시보와 뉴스가 긴 하루의 흐름을 알려줄 뿐이었다.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서 쉴 새 없이 분주히 하루를 보낸 아버지는 저녁상을 물리고 얼마 되지도 않은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졌다. 곁을 지키는 라디오는 이런 주인을 아랑곳하지 않고, 저 혼자 남아 앵앵거리며 떠들어댔다.
아버지의 겨울 하루는 매일 같이 그렇게 시작되고 끝이 났다. 이젠 어렴풋한 옛이야기가 된 아버지의 겨울 하루가 참으로 그립다. 자신의 성품을 꼭 닮은 아버지의 소리 없는 웃음도 기억 저편에서 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