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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동 Jun 21. 2021

텔레비전이 왜 그렇게 보고 싶었을까?

대형 텔레비전도 모자라서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즐기는 세상이 되었다. 이 정도면 누구나 TV 한 대씩 들고 다니는 셈이다. 이런 세상이 올 줄 그 누가 알았겠나?! 

    

내 어린 시절 우리 집엔 그 흔한 흑백텔레비전 하나 없었다. 텔레비전이 처음 나왔던 시대는 이미 지났기 때문에 작은 시골 마을에도 집집이 그런 것 하나쯤은 있는 시절이었다. 

집안 형편이 넉넉잖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텔레비전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눈을 뜨기가 무섭게 종일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한테는 한가한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저녁을 물리고 나면 곧장 곯아떨어지기 일쑤였고……. 일하고, 잠자는 것 외에 별도의 시간이 없는 이한테 텔레비전은 그저 쓸모없는 물건이고, 사치일 뿐이었다. 라디오도 못다 듣고 자는데, 그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어쩔 수 없이 난 이집 저집 텔레비전 동냥을 다닐 수밖에 없었다. 누가 대 놓고 뭐라 하지는 않았지만, 이런저런 눈치가 보이는 집은 두 번 발을 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한동안 드나들었던 집은 초록 대문이 있던 집이었다. 그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가끔 주전부리도 얻어먹었다. 사카린을 넣고 푹 삶은 검정콩은 참 맛났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콩이 검정콩이었는지, 사카린을 넣었는지 정확하지 않다. 텔레비전을 볼 때면 으레껏 불을 끄고 봤기 때문에 안방 텔레비전 화면에서 나오는 빛이 방 앞에 놓인 들마루까지 환하게 비추지 못했다. (물론 텔레비전을 보는 데는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지만) 할머니께서 건네준 콩이 그저 그 빛 아래서는 검게 보였고, 구수한 맛 때문에 팥인가 싶었는데 그러기엔 알이 굵었고, 단맛은 사카린 때문이라고 짐작했다. 

내가 그것에 대해 이리 세세히 기억하고 떠올릴 수 있었던 건, 난 오래도록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무슨 콩으로 어떻게 만들면 그런 맛이 났을까, 어른이 되고서도 한참 동안 궁금했기 때문이다

     

한번은 기침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서 들마루에 앉은 나는 한기가 느껴졌다. 그래도 난 연속극 보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나 보다. 끝까지 연속극을 다 보고 나서야 어두운 빗길을 걸어서 집으로 갔다.  

   

“야이야, 니는 체면도 없나. 고만 좀 가거라!”

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나를 향해 방안에 누워 있던 할아버지께서 소리를 꽥 질렀다. 할머니는 “아 놀라게 왜 그러냐고.” 할아버지를 나무랐지만, 그날 이후로 더는 그 초록 대문이 있던 할머니네로 가지 못했다. 

멈추지 않던 기침에도 비가 오는 밤길에도 마다않던 텔레비전 동냥을 난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또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집에 언니들도 있었을 텐데. 난 왜 그 할머니네를 혼자서 그렇게 자주 갔을까? 어린 난 왜 그렇게 텔레비전이 보고 싶었을까? 어떤 사연으로 어린 내가 그 초록 대문집을 그렇게 드나들게 되었을까, 몇 번을 되짚어봐도 좀처럼 기억나지 않았다.

반면 엊그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저녁 어둠이 깔릴 때쯤, 집집마다 저녁을 물리고 텔레비전 화면 앞에 모여드는 시간이면 난 우리 집 골목길에 있던 그 초록 대문을 들어섰고, 방문이 환하게 열린 들마루에 한쪽 끝에 앉아서 주말 연속극에 빠져들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도 모르게 몇 번이나 울컥했다, 저 꼬맹이가 너무 짠해서. 나이가 들면 눈물이 흔하다더니……!          


그리고 몇 년이 더 흐른 후에 우리 집에도 조그마한 중고 흑백텔레비전이 들어왔다. 오히려 이때부터는 텔레비전을 어떻게 봤는지 별다른 기억이 없다. 참 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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