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달꽃 Aug 26. 2020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슬기롭게 감상하는 법

1. 초등학교에 갓 입학할 무렵, 설레는 마음으로 받아 든 교과서들 틈에 <슬기로운 생활>이 있었다. 도덕이나 미술, 체육, 음악 대신 '바른 생활', '즐거운 생활'이란 유혹적인 교과목명으로 제도교육에 본격적으로 편입되던 시절, 모범적인 어린이가 되기 위해 책상 위에 늘 펼쳐 놓았지만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그 교과서를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교수들은 닮았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가 된 사람들. 걸출한 능력보다 더 알차게 무르익은 인품과 책임의식이 돋보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끼리 끈끈한 우정으로 뭉쳐 추억 속의 5인조 밴드를 재결성하며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가 어떻게 교과서 밖 현실일 수 있을까?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라는 문학계의 유명한 격언을 가볍게 무시하고 레지던트들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 동료 교수 한 사람의 입을 빌어 진행되는 이 드라마의 인물 소개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고전소설 속 영웅 주인공의 일대기를 들려주던 옛 이야기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괄식 말하기 습관을 두괄식 말하기로 바꾸기' 정도의 변화밖에 허용하지 않는 동갑내기 교수들의 캐릭터는 그러므로 단연, 성장형이 아니라 완성형이다.

2. 이 드라마의 특색은 이렇듯 신이한 영웅들을 주역에 배정해 두고 과감하게 '사람 사는 이야기'와 '공감'을 기획의도로 표방하는 데서 오는 근원적 간극에 있다. 이걸 극복하는 제작자들의 방식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영리한데, 치명적이지 않은 결점 몇 개를 반전매력 요소로 던져주고 다섯 명을 한데 붙여 놓으면 된다. 누구보다 다정하고 따뜻한 의사에게 친구들 옆에서 가장 예민하고 까칠한 이중성을, 냉철하고 이지적인 의사에게 내 여자한테 죽고 못 사는 팔불출 기믹과 초딩입맛을 준다. 무서울 정도로 원하는 목표를 모두 쟁취하는 완벽주의자는 이십 년의 세월로도 구제 불가능한 음치로 만든다. 결정적으로, 볼 꼴 못 볼 꼴 다 보여주며 부닥쳐 온 죽마고우 설정을 추가해서 엉덩이만 붙이면 볶음밥 개수로 티격태격하는 영웅들을 만든다. 이런 각각의 캐릭터와 배우 간의 궁합이, 그리고 이들이 모였을 때의 시너지가 그야말로 찰떡같아서 없던 단짝친구들과의 추억마저 떠올리게 해낼 정도다. 이로써 시청자는 교과서를 찢고 나온 듯한 비현실적 설정에 간단히 괄호를 쳐 두고, 이인(異人)들의 가장 개인적인 공간으로 거부감 없이 걸어들어가 이들 간의 유대를 엿보거나 자기화할 수 있다. 거리감이 좁혀지지 않는다면 고전소설이요, 범인(凡人)들의 일상으로 들어가면 인간극장이니, '슬기로운 의사들의 일상'을 향유하는 건 실로 신선한 특권이리라. 그러니까 너무 쉽게 눈에 띄는 이 드라마의 모순적 토대는 제작자들의 멍청함이 아니라 설계의 산물인 것이다. 그 설계가 의도대로 잘 구현되었는지에 대해서라면, 최소한 시청률만큼은 긍정적으로 평가한 듯하다.

3. 그렇다고 이 드라마의 매력을 '이인에의 이입'이란 언어유희적 수사 정도로 재단하기는 곤란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일명 '슬의')의 영리함은 결정적인 순간에 인물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방해하고 거리감을 벌려 놓는 데서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연애하는 드라마'라는 한국드라마의 고질적 병폐를 연장하고 있다는 오명을 피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무하는 슬의의 러브라인들 중엔 어느 하나 친절하게 설명된 관계가 없다. 한쪽의 입장에서만 서술되는 건 예사고, 아예 사랑에 빠진 계기처럼 결정적인 서사 요소를 과감히 넘겨 버리기도 한다. 담백한 전개를 위해서라 하기엔 필요 이상으로 불친절하고, 이입의 대상을 확정하거나 추리의 재미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설명만으로도 아주 석연치는 않다. 하지만 인물들의 매력과 시너지만으로 넘지 못할 한계가 얼마나 분명하고 치명적인지를 생각해 보면 이런 작법이 노리는 효과는 의외로 간단하다. "쟤랑 쟤 연애하나 보네." 정도의 단편적이고 불확실한 정보들만이 띄엄띄엄 발견되고 전달되는 직장. 모두의 사연에 귀 기울일 만큼 한가하지 않은 병원. 그게 진짜 '현실'임을 슬의는 알고 있는 것이다. 작법의 관점에서 비개연적이고 안이한 전개가, 현실 세계에 견주어 보면 가장 핍진한 전개가 된다. 전 뒤집듯 태연하게 반전 카드를 꺼내 드는 유연함 또한 이런 불친절한 서사에 의존한다. 판이 작아야 뒤집기 쉬우니까. 그런 식으로 진상 환자와의 불화를 해결하는 과정은 작위적이기 짝이 없지만, 어떤 면에선 가장 핍진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격언이 들어맞는 사례가 현실에선 심심찮게 경험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의도적으로 현실화된 세계관은 그 안의 비현실적 주역들까지 자연스레 현실에 있을 법한 사람들로 만든다.

4. 한편으로 성장과 교훈의 건덕지가 도저히 찾아지지 않는 교수들의 완전무결함을 타개하기 위해, 이 똑똑한 드라마는 두 가지 형태의 인물 군상을 조역과 단역 자리에 배치해 둔다. 레지던트 캐릭터가 전자이고 환자 캐릭터가 후자이다. 끼리끼리 붙어먹을 때 범인화되는 교수 5인방이 영웅화되는 것은 이들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레지던트와 "선생님, 제발 우리 누구누구 살려주세요."를 연발하며 눈물 훔치고 고마움을 표하는 환자들에 의해서다. 그런고로 가장 극적인 성장은 레지던트에게 돌아가고 휴머니즘 서사는 환자와 의사 간의 관계 맺기에서 드러난다. 휴머니즘이란 주제의식을 위해 마련된 환자들의 에피소드는 옴니버스 구성의 작품에서 으레 그러하듯 단편적인 사연들의 나열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그 구도는 전형적이기까지 해서, '정보의 편향으로 인한 오해-새로운 사실이 밝혀짐-화해'라는 도식 하나만으로도 많은 에피소드를 설명할 수 있다. 이 낯익은 동어반복 구조의 식상함을 누군가 공격하려 들면 3화에서 채송화가 읊조린 대사를 소환하면 된다. "이 일이 힘은 드는데, 금방 익숙해져. 근데 익숙해질 게 따로 있지, 우리 일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참으로 우아하고 세련된 변명 아닌가! 비꼬려는 게 아니라 실로 탄복이 절로 나오는 설계다. 당신이 식상함을 선언하는 순간 환자의 절박함과 불행이 곧 의사의 식상한 일상적 업무의 영역으로 편입되는 셈이니.

5. 이 드라마의 안일함과 유해함을 지적하는 논변들은 충분히 유의미하다. 치료비가 부족한 환자는 재벌의 선의로 구제하면 그만, 부족한 외과 노동력은 동료들의 지지와 개개인의 사명에 기대 확보하면 그만, 한정된 진료의에게 환자를 몰아넣어 늘어지는 대기 시간은 서로서로 이해하고 인내하면 그만. "힘든 상황에서 발 벗고 나서 주신 의료진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라는 감사 인사와 함께 열악한 업무 환경을 '노고 문제'로 퉁치는 데서 안주해 버린 '덕분에 챌린지'는 의사들이 처한 실질적 문제 개선에 무슨 도움을 주었나? 구조적 문제를 휴머니즘으로 매듭 짓는 서사가 얼마나 안일하고 유해한 것인지 깨닫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환자들의 울음과 절규가 반복되는 드라마에 대해 '마음 편히 볼 수 있어서 좋다.'라는 평이 심심찮게 나온다는 근거만으로도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불행 포르노'라는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유해함을 낳는 제작자와 시청자들 간의 공조 작업에서 각자가 어느 정도로 기여하고 있는지는 더 어렵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휴머니즘 서사의 유해함은 그것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안일함이 잉태될 때 나타난다. 다시 말해 휴머니즘을 말하는 서사는 필요악이다. 공감과 휴머니즘은 다음 단계의 논의를 위해 반드시 밟고 넘어가야 할 초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고 그러니 '더 나은 사회'를 외치는 목소리들이 때때로 휴머니즘 이상의 논의를 위해 개인을 지워 버리는 광경이 목도되는 것은 굉장히 슬픈 역설이다. 우리 중 누군가에겐 여전히 그 초석이 절실하며, 신원호-이우정 사단의 재능은 그걸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이야기를 만드는 힘이다. 지루한 대기 시간에 항의를 연발하던 산모가 진료실 안에서의 울음소리를 듣고 자신을 대변하려던 남편에게 눈물 머금은 얼굴로 가만히 있으라고 다그치는 장면은 얼마나 직관적인가! 어쩌면 그들은 그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설령 이 글과 그들의 의도 사이에 접점이 없더라도 우리가 슬기로운 시청자가 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리라.

6. 이런 복잡한 생각 없이 봐도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충분히 즐겁다. 아니, 오히려 이 드라마의 평화로운 템포와 유토피아적 세계관이 요구하는 바는 이쪽에 가깝다. "머리는 우리가 쓸 테니, 당신은 머리를 비워라." '쟤가 쟤 좋아하나 봐,' 같이 수군거리는 재미로 봐도 되고, 거실에서 청소기 돌리면서 쉬엄쉬엄 봐도 된다. 그러니 슬의를 슬기롭게 감상하는 법은 거칠게 두 마디 선에서 정리 가능하다. 마음 놓고 힐링하기, 그리고 현실을 살기.

7. 2021년에 방영될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는 2020년을 배경으로 다룬다. 공교롭게도 2020년은 이 드라마의 제작 초기 당시 절대 예측되지 못했을 여러 파란으로 다사다난한 해가 되고 있다. 의드라면 그리고 2020년 배경의 드라마라면 코로나19의 영향력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에선 정부의 안일하고 무책임한 정책에 반대하는 의대생들이 대대적인 동맹휴학을 선언했다. '덕분에 챌린지'와 '덕분이라며 챌린지'가 복잡하게 뒤얽힌 2020년 대한민국이란 무대 위에, 그들은 기꺼이 이익준을 올려놓을 수 있을까? 아니면 이전부터 잘 먹혀들었던 성공 궤도를 무난하게 따라갈까. 어느 쪽이 모험이고 어느 쪽이 안전일지, 나는 잘 모르겠다. 세상은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지갑 없는 남자가 용산역에서 부산행 기차를 타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