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조전망대, 그 황홀함에 대하여
낙조전망대, 그 황홀함에 대하여
양 떼가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가을 하늘이다. 나무에는 성큼성큼 가을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어디에, 어느 곳에 시선을 두어도 가을이 물들고 있다. 친구와 함께 가을을 만끽하기로 했다. 소풍을 즐기며 답답했던 마음에 활력소를 갖고 싶었다. 낙조 전망대에서 노을을 감상하기로 했다. 바다소리 해안 둘레길과 진달래 향기 둘레길 중에 우리는, 바다소리 해안 둘레길을 선택했다.
종현 어촌체험마을부터 걸었다. 평일이라서 인적도 뜸하고 기다림에 지친 갯벌이 반갑게 맞이해줬다. 파도는 갯벌만 남겨두고 마실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갯내음이 달려와 반겼다. 사진도 찍고, 바람을 안으며 시나브로 시간을 밟으며 한가로움을 즐겼다. 바다를 찾아보기 위해 길 아래로 내려가 보았다. 까만 바위에 자연산 굴들이 다닥다닥 앉아서 밀물을 기다리고 있었다. 찬바람이 얼굴을 비비고 도망갔지만 반가운 인사쯤으로 여겼다. 마실 갔던 파도가 갯벌을 야금야금 삼키며 우리를 쫓아왔다. 갯벌은 잃어버린 파도를 찾아 생기가 돌고, 우리는 바다를 빠져나와야 했다. 파도에 잡히지 않으려고 술래잡기하듯이 신이 나게 달렸다.
바위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구봉 선돌이다. 작은 바위는 할매바위, 큰 바위는 할아배바위다. 고기잡이 떠난 할아배를 기다림에 지친 할매는 비스듬한 바위가 되었고, 몇 년 후에 돌아온 할아배도, 할매가 너무 가여워 바위가 되었다. 이 바위가 구봉이 어장을 지켜준다고 한다. 아름다운 황혼 부부의 애틋한 사랑도 한 편의 서사시로 그려졌다. 그리움이 꿈틀대는 수평선에 시선을 둔 노부부 뒷모습 같았다.
개미허리 아치교를 건너는데, 바람이 달려와 머리를 헝클고 도망갔다.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아 용서해주기로 했다. 아치교를 중심으로 오른쪽 바다와 왼쪽 바다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오른쪽은 시퍼런 파도가 찰싹찰싹 절벽을 때리며 생동감 넘치는 동해 같았다. 왼쪽은 침묵이 긴 고즈넉하고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바다의 두 얼굴을 보았다. 나무숲 사이사이에 바람이 잠들어 있다가 우리 발걸음 소리에 놀라 뺨을 때리고 후다닥 도망갔다. 바닷가 숲에서 느껴보는 맛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빨간 등대가 서 있고, 서해안의 아름다운 노을과 햇빛을 형상화한 공모작 <석양을 가슴에 담다>는 구조물이 우리를 맞이했다. 추억을 남기기 위해 카메라에 느낌을 담았다. 자세도 여러 각도에서 찍고, 자세를 바꿔가며 추억을 가두며 까르륵 웃음보따리를 풀었다. 방향을 바꿔가며 바다를 감상했다. 청아한 하늘빛과 마주한 푸른 바다는 경계를 모르게 펼쳐있다. 시퍼런 파도가 생동감 넘치고, 풋풋함이 꿈틀거렸다. 벤치에 앉아서 바라본 바다는, 살짝 노을빛에 물들어 있었다. 소금 가루가 뿌려지는 물결이 잔잔하게 펼쳐있다.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는 윤슬은 별빛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상념을 끌어모아 시선을 붙잡았다. 다시, 시선을 바꾸고 보니, 잿빛 갯벌이 펼쳐져 있고 노부부가 서 있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쓸쓸한 듯 쓸쓸하지 않은 그리움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바다였다.
한 곳에서 바다의 다양한 모습을 감상했다. 저마다 향기와 다른 맛을 선물해준 낙조 전망대의 매력에 흠뻑 젖었다. 가끔 바람이 머리를 쓸어 주었고 갯바위에 앉은 갈매기 떼들은 소풍 나온 여학생들처럼 쉼 없이 재잘거렸다.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뭐가 그토록 재미있는지 궁금했다. 슬그머니 위에서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해가 뜨고 질 때 활발해지는 갈매기들도, 태양이 수평선을 붉게 물들일 때 한두 마리씩 날개를 퍼덕이었다. 배웅 나간 갈매기가 날개를 활짝 펴고 석양 앞으로 날아오르는 모습이 그림을 빚어냈다. 마침, 고깃배 한 척도 지나가고 있다. 또다시, 그림 같은 풍광이 내 시선 앞에 펼쳐졌다. 만선으로 귀항하는걸까, 만선을 꿈꾸며 바다로 나가는 걸까. 고깃배가 멀어질 때까지 눈에 담았다.
해처럼 둥근 구조물에 석양을 가두어서 찍어보기도 하고, 살짝 빗겨서 찍어 보기도 하고, 전체적인 느낌을 살려서 담아보았다. 오늘만큼은, 노을빛에 영혼을 팔아버린 우리를 사진작가로 탄생시켜 주었다. 석양에 비친 그림자로, 어스름 빛을 반만 품은 분위기에 젖어 시간을 잃어버렸다. 산마루에 해가 퐁당 빠져버리면 캄캄해질 텐데,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느낌을 담았다.
개미허리 아치교 바람은, 파도가 가까이 오니까 머리카락을 철 수세미처럼 헝클었다. 어느새 바다가 길을 꿀꺽 삼켜버렸고, 파도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길 가까이 와 있었다. 아치교 너머의 바다와 합쳐지려고 파도가 달려오고 있었다. 뾰족뾰족한 바위를 엉금엉금 기어서 탈출했다. 아쉬운 마음을 부여잡고 뒤돌아보니 어스름 빛에 그림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석양을 산마루에 빼앗기고 사방이 캄캄해도, 불빛을 나누어 주지 않는 얌체 가로등을 보며 거닐었다. 가까이에서 출렁이는 서해는 갯벌만 남겨진 모습과는 또 다른 멋을 자랑했다. 가로등은 초저녁부터 잠이 들어서 캄캄한 길을 더듬었다. 선돌 앞에서 아쉬움을 놓고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다른 사람과, 혹은 단체로 오면 휙 둘러보고, 휙 지나버려 놓쳤던 낙조 전망대의 황홀한 모습을, 간이역처럼 지나치지 않고 시나브로 노을을 담았다. 해돋이만이 경이롭고 장관이라며, 동해로 떠났던 시절이 있었다. 떠오르는 태양이 열정이 꿈틀거리고 생동감 넘쳐서 황홀하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노을빛이 더 붉게 물들고 황홀한 여운을 남기고 넘어감을 알았다. 저무는 태양은 끝이 아니다.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법을 알았다. 시나브로 시간을 더듬으면서 더 깊고 풍성한 맛을 알아가고 있다. 세월에 익어가고 있는 나를 보았다. 의미를 새기며 느긋함을 즐길 줄 아는 법을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