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무렵이면 김밥과 함께 소풍을 즐기고 싶었다. 벚꽃 그늘 아래서 마음 밭이 고운 벗들과 오붓한 시간을 계획했다. 겨울눈을 품은 나뭇가지만큼이나 봄을 기대하고 있었다. 길었던 겨울이 물러가고 봄은 오고야 말았다. 기대감처럼 부푼 꽃봉오리는 설렘 가득한 봄이었다. 주말마다 달려간 그곳에 조금 늦은 벚꽃이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캠핑장에 가기 전에 김밥 재료를 샀다. 텃밭에서는 당귀 잎을 뜯어서 씻어놓았다. 당근은 채 썰고 달걀은 부쳐서 길게 썰었다. 단무지랑 우엉도 나란히 놓고 어묵은 한 번 볶았다. 나름 맛과 향, 색깔까지도 생각하면서 재료를 준비했다. 오랜만에 말아보는 김밥이었다. 나도 나를 못 믿지만 어쩌다 보니, 하게 됐다.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 모르겠다. 실패한 맛을 보던 성공적인 맛을 보든, 함께한 친구들 복이었다. 음식을 풍월로 배운 나를 믿은 덕분이었다. 생뚱맞은 재료를 과감하게 사용하여 맛을 창조하는 나였음을, 그대들은 미처 몰랐으리라. "김밥에 웬 신선초냐? 그냥 오이나 시금치를 넣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애써 외면했다. "오늘은 내가 요리사!" 내 멋대로, 내 방식대로 하기로 했다. 사실, 자신 없지만, 맛이 궁금했다. 어정쩡한 초보의 솜씨 덕분에 주변은 아수라장이었다. 너도나도 내가 못 미더워 무엇을 해야 할지 물어가며 돕는 솜씨가 더 야무지다. 내 꼴을 보니 뭐라도 해야 하기를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왔나 보다. 당귀의 향긋함으로 겨울 동안 게을러진 바이오리듬에 상큼함으로 일깨워주고 싶었다. 향기 짙은 당귀잎을 선택한 이유였다. 진짜 이 맛이 아니다 싶으면 살짝 빼고 먹으면 되겠지. 맛이 궁금했던 우리는, 처음 하나를 잘라 맛을 보았다. 너도나도 입에 넣는 순간 감탄사가 쏟아져 나왔다. 준비한 시간이 너무 길었던 탓에, 허기에 몸부림치다 먹어서 그런지 허겁지겁 먹었다. 당귀 잎의 향긋함에 반하여 맛의 찬가를 불렀다. 사실 처음 도전했기에 '맛이 없으면 어쩌나, 김밥 옆구리 터지면 어떡하나! 온갖 걱정이 앞섰다. 겉으로 호언장담했던 나와, 반신반의했던 친구들이었다. 자신감은 풀이 죽어 졸아들었는데, 막상 먹어보더니, 당귀잎이 신의 한 수라며 엄지 척 올리며 기를 살려주었다. 김밥을 자르기도 전에 통째로 붙잡고 베어 먹었다. 배가 고파서 어쩔 수 없이 먹는지, 정말 맛있어서 먹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서툰 솜씨로 바동바동 김밥을 마는 내가 안쓰러워서 맛있게 먹어 줬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잘 먹으니 좋기만 했다. 낑낑대며 칼질하는 모습을 보더니 자르기도 자청했다. 옹기종기 앉아서 꽁지니깐 내가 먹고, 옆구리 터졌으니 네가 먹고, 이래서 먹고 저래서 먹는다고,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만들어 웃음을 터트렸다. 너도 먹었으니 나도 먹고, 얘도 먹이고 재도 먹이고??ㆍ 서로 챙겨 주고 입에 넣어주면서, 웃으면서 먹어가며 장난치느라 시간이 훌쩍 떠나버린 줄도 몰랐다.
양을 조절 못 했다. 재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배는 이미 불러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너도나도 여기저기서 배부르다고 한숨을 토해냈다. 그런데도 말아 놓은 김밥이 한가득하였다. 저녁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포만감 해결이 급해졌다. 함께 마무리하고 일부는 냇가에서 물고기 잡고, 다슬기를 잡으러 갔다. 일부는 쑥과 봄나물을 뜯으러 갔다.
계획은 벚꽃나무 아래에, 참깨를 송송 뿌려 꽃처럼 담아낸 김밥과 과일을 올린 식탁이어야 했다. 따뜻한 차 한 잔씩 들고, 눈 부신 햇살을 비스듬히 등에 지고,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의 노래를 바라보며, 이야기꽃 피우는 한 때를 보내야 했다. 현실은, 김밥만 말다가 한나절이 다 보내버렸다. 상을 차리기도 전에 배는 양껏 채워져 더는 무리였다. 겨울부터 아니, 더 오래전부터 꿈꾸어 왔던 그림 같은 이야기 한편이, 봄바람을 타고 꽃잎처럼 떨어져 버렸다. 벚꽃이 만개한 가지 사이로 코발트 빛 하늘을 마주 보며 웃음을 빚어냈다. 꼭,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준비하고 만드는 과정이 즐거웠다. 더 이상의 미련은 없었다. 다시 봄은 올 것이고 벚꽃은 필 테니까.
살면서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얼마나 있었던가,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며 앞만 보고 뛰는 날도 많았다. 목표에 못 미쳤어도 어디에 의미를 두느냐에 따라 울고 웃을 수 있다. 혈기가 왕성할수록 무조건 계획대로 결과가 나와야 했다.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열정을 태워 얻어낸 결과에 갈증은 더 심했다. 과정에서 주는 즐거움을 만끽할 여유는 사치다. 과만 좋으면 인정받는 것 같고 성취감에 자신감도 충만해진다. 온 세상을 갖은 양 의기양양하다. 결과가 처참했다면 풀이 죽어 방황의 시간을 걷는다. 발전을 위해 긴 시간을 붙잡고 쉴 틈이 없다. 시간 투자가 경쟁력이다. 쉼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물론, 살다 보면 계획을 세우고 결과를 얻어내야 할 일도 많다. 실패로 하늘이 무너졌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결과만 쫓는 것보다 과정이 더 흥미롭고 삶의 지혜를 깨우칠 때가 더 많다. 마음먹은 대로 결과만을 창출하고자 과정을 가볍게 여기며 숨 가쁘게 가고 싶지 않다. 결과만 쫓는 것보다 과정이 더 흥미롭다. 마음먹은 대로 결과만 창출하고자 과정을 가볍게 여기며 숨 가쁘게 가고 싶지 않다. 조금 느리게 간다고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나치게 결과에만 치중하다 보면 충돌이 생기게 마련이다. 서로의 가슴을 할퀴어 아프게 빚어내는 일이다. 과정에 가치를 부여하며, 충돌 없이 유유하게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맛도 좋다. 경험이 빚어낸 마음의 여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