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등성이마다 저마다의 빛깔로 익어가는 가을날이었다. 청아한 하늘은 바람을 움켜쥐고 고즈넉한 숨을 쉬고 있었다. 구불구불 비포장 흙길은 세월을 거슬러 가듯, 과거로 달려갈 것 같은 기대감도 함께 걸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의 향기와 재잘대는 시냇물 소리가 끝이 없을 것 같았다. 굽이진 길에 동무처럼 내 곁을 따라나섰다, 가끔 자동차가 먼지를 날리며 앞질러 갔다. 울퉁불퉁한 이 길을, 정겹게 누워 있는 이 길을, 십수 년째 걸었다. 몇 번을 굽어 돌고 돌아서 가파른 길을 올라야 했다. 손만 뻗으면 하늘이 닿을법한 곳까지 올라갔다. 계단 끝에 소박한 기와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가지런한 마당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마지막 숨을 끌어올렸다.
먼저 대웅전에 가서 삼배를 올리고, 나한전으로 가는 마당에 개복숭아나무 아래에 '행복 나누기'라는 푯말이 걸음을 붙잡았다. 10kg 쌀 한 포대부터 보시를 받는다고 했다. 모인 쌀을 지역 소외계층에 전달한다고 하셨다, 곧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에 이웃을 생각하며 나눔을 실천하는 뜻에 동참했다. 백지에 매직펜으로 생년월일과 이름을 써서 붙여준 쌀 포대를 부처님 전에 올리고 삼배했다. 이미, 많은 사람이 동참해서 산더미처럼 쌓인 포대를 바라보는 마음도 든든했다. 비단처럼 고운 단풍도 즐기고, 다양한 음악도 즐기면서, 행복 나눔도 하는 하루가 가득 채워지는 것 같았다. 덜어냈는데 더 가득 채워진 것 같았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조금씩 덜어서 보태면, 어느새 태산처럼 커지는 모습을 보았다. 작은 힘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 수 있는 좋은 본보기다. 그들의 하루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행복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했듯이, 작은 정성이 누군가의 겨울이 따뜻하고, 든든한 하루를 지켜주는 힘이 되기를 바랐다.
마지막으로 삼성각으로 올라갔다. 참배만 하고 바로 내려오기엔 아까운 곳이었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감상하기 딱 좋은 곳이다. 점심 설거지를 하고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커피 한 잔씩 타고 일부러라도 올라가 법당 문 앞에 앉아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좋았던 추억을 회상한다. 적당한 햇볕 한 줌, 바람 한 움큼이 머무는 곳에서 감상하는 단풍이 춤을 추는 무희 같았다.
음악회를 시작하는 시간은 아직 남아있었다. 앞자리 좋은 자리는, 어르신들께 양보하고, 오늘 처음 오신 분들께 양보했다. 나는 맨 뒷자리도 무관했다.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마음이 너그러워졌다. 굳이 무대 앞에 자리를 잡지 않아도 음악 감상할 수 있는 곳은 많았다. 다만, 준비된 좌석을 채운다는 것은, 무대에 오른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무대에 오른 사람은 앞에 관객이 가득 채워졌을 때 더 힘이 날 테니까. 나도 작은 힘이 되기 위해, 법당에 모두 참배를 마치고 무대 앞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 오신 분들이 많으신지 자리에 앉아서 앞에 펼쳐진 단풍을 감상하고 좌우로 둘러보면서 연신 감탄사를 뿜어내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소식 따라 찾아온 알록달록 사람들 옷이 단풍처럼 고운 빛깔이다. 무대 앞에 놓인 잿빛 좌석들이 단풍처럼 채색되어 차곡차곡 약속된 시간을 채워가고 있었다. 사방이 비단결 같은 풍경이 병풍처럼 두른 고즈넉한 산사에 무대를 세워 놓았다. 특별하게 꾸미지 않았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탁 트여서 절정으로 익어가는 가을을 만끽하기에 충분했다.
풍물놀이가 신명 나게 시작을 알렸다. 꽹과리 소리가 좋은 날이라고 산야를 울렸다. 우리의 정서에는 역시 사물놀이는 빼놓을 수 없는 것 같았다. 마음을 설레게 하고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극대화하기엔 좋은 열린 굿이었다. 라이브로 듣는 민요 대잔치 역시 흥겹다. 단풍처럼 곱게 차려입은 한복들과 시원하게 뽑아내는 소리에 마음도 청아해졌다. 인근 부대에서 난타 공연으로 축하 메시지를 던졌다. 두들김과 몸짓이 예술인 난타는, 흥미롭고 가슴을 두들기는 것 같았다. '공연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의 땀을 흘렸을까?' 하는 마음이 저절로 부풀어 올랐다. 가을날, 산속의 해는 짧다. 음악회가 절정으로 향할수록 그늘이 드리워지는 산사는 한기가 맴돌았다. 쌀쌀해도 아랑곳 안 하고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경쾌한 음률은, 흥에 흠뻑 젖어든 관객들을 어깨춤을 추게 했다. 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즐기시는 모습에서 사람의 향기가 묻어 있었다. 일부러 멋을 부리지 않고,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소박한 춤사위였다. 즐기는 사람도, 바라보는 마음도 흥겨웠다.
TV나 라디오를 통해서 목소리만 들어왔던 가수가 출연한다는 소식에, 내심 기대를 하고 자리를 지켰다, 사찰을 찾는 신도 대부분이 중년 이상임을 고려해서 초대된 가수가 마지막을 장식했다. 청량한 음색으로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가창력으로 부르는 찔레꽃, 언제 들어도 가슴을 후벼 팠다.
뻐꾹새 울며 깊어가는 어느 여름날의 밤이었다. 녹차를 따라놓고 마지막 시간을 놓을 수 없어서 밤을 붙잡고 있는 우리가 들었던, 찔레꽃. 그 날밤, 그 시간으로 나를 데려가 기어이 그 앞에 앉혀 놓았다. 밤이 기울고 새벽이 올 때까지 무한 반복으로 들으며 마주했던 시간이 있었다.
찔레꽃이 진자리에 빨간 열매가 앙증맞게 맺었다. 빨간 열매가 서리에 하얗게 젖은 계절이 왔어도, 내 가슴에는 아직도 찔레꽃이 한창 피어 있었다. 하얀 찔레꽃이 흩어지게 피었던 여름날, 뻐꾸기 울던, 산사의 그 밤에 한참 동안 머물러 있었다. 산기슭에 울려 멀리 도망가는 듯했는데, 메아리 되어 가슴에 파고들어 여운을 남겼다. 세 곡을 듣고도 아쉬워하는 팬들을 위하여 한 곡 더 부르셨다. 무대 위에서 다른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만, 내 마음에는 찔레꽃만 울려 퍼졌다. 무한 되돌림 재생 중이었다. 가수의 음색은 그리움이 짙어 노을빛 추억을 끌고 오기에 충분했다. 그리움만 덩그러니 남겨둔 채 서둘러 내려가셨다. 가수들은 많은 팬을 몰고 다녔다. 어디든 무조건 따라다니는 팬
이 얼마만큼 많으냐가 인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인기 있는 가수가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팬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기 위해서 자리 잡고 앉아서 긴 기다림에 익숙해 있었다. 노래를 끝내고 좋아하는 가수가 무대를 내려가면 뒤도 안 돌아보고 우르르 따라 관람석을 빠져나갔다.
나는 무대 위 모든 공연이 끝났어도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주위에 펼쳐져 있는 산자락들의 가을 잔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귀빈석이 따로 없다. 오감이 흡족한 산사 음악회였다.
산사의 단풍 음악제는 먹고 즐기기 위한 잔치가 아니었다. 화려하고 꽃보다 고운 단풍만을 만끽하고자 모이지도 않았다. 그들은 나눔을 하기 위한 따뜻한 실천가들이다. 홀몸노인들을 위해 쌀을 나누고, 정을 나누고, 행복을 나누었다. 낙엽 향기처럼 사람 내음도 구수하게 묻어나는 행사였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꿈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이는 청소년들에게는 희망을 선물했고, 외롭고 쓸쓸한 홀몸노인분께는 따뜻한 삶을 응원했다. 마음을 채워주는 나눔의 미학이 스며있는 음악회였다. 공연하는 사람들도, 노래를 즐기는 사람도 나눔이라는 미학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쌀쌀한 날씨는 한낱 부질없었다. 절정으로 타오르는 가을이, 높고 깊은 산사에서 불태우는 열정이었다. 희끗희끗 서리 내린 노파의 가슴부터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까지 모두의 가슴 어디쯤에도 저마다의 단풍으로 물들게 했다.
서산으로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내 그리움은 저만큼 붉게, 더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올해는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조용히 넘어갔다. 만추의 황홀감에 맘껏 젖어보지도 못하고 떠나보내야 하는 이 가을이 아쉽다. 하루빨리, 무사히 지나가기를 두 손 모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