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줍기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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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기로운 민정

가을의 대명사 밤송이가 입을 벌려 알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후드득후드득 비명을 지른다. 외마디 아우성을 외면할 수가 없다. 한 번 빠지면 당최 헤어 나올 수 없는 유혹이다. 밤 숲 속에 모기는 아직 팔팔해서 사람을 보면 저돌적으로 날아온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라는 속담이 무색할 정도다. 모자를 쓰고 마스크에 긴팔 긴 바지로 완전히 무장해서 모기 극성에 대응해야 한다. 그래도 아직 부족하다. 밤 가시로부터 안전한 장갑을 끼고 집게는 필수다. 알밤으로 떨어진 밤보다. 밤송이 안에 있는 알밤은 더 많다. 발로 밤송이를 밟고 집게로 쏙 빼내는 맛도 쏠쏠하다. 갈색에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알밤이 신선함을 자랑한다. 떨어진 밤송이에서 꺼내는 밤은 솜털 같은 분이 묻어 있어 햇밤임을 과시한다. 갈색 속살을 반짝이며 반기는 알밤이 우릴 반긴다. 설레는 마음으로 냉큼 주워 담기 바쁘다. 손은 줍고 눈은 다음 주울 밤을 탐색하기 바쁘다. 높지 않고 험하지 않은 산이라 밤 주우러 온 사람이 많다. 더 큰 밤을 줍고 싶어서. 더 많이 줍고 싶어서 은근히 경쟁이 도발된다. 주워도 주워도 너무 많은 알밤을 보며 경쟁은 스르륵 녹아버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욕심내지 않고 먹을 만큼만 주우려고 하던 첫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하나씩 하나씩 모은 알밤이 어느새 한가득 모아졌다. 한 개씩 주울 때는 미처 느끼지 못한 묵직함이 느껴지면 마음도 풍성해진다. 혼자 먹기는 너무 많아서 주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나누면 나눌수록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자꾸 늘어난다. 한 움큼씩 받은 사람들 입가에 함박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는 내 마음에도 덩달아 꽃송이가 피어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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