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봉지로 100-22

#책과강연#백백글쓰기#14기#라면봉지로

by 향기로운 민정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라면을 끓이기로 했다. 봉지를 뜯어서 끓는 물에 넣고 봉지를 버리려다가 주춤해진다. 화려하고 제법 두툼해서 그냥 버리기에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중학교 반 친구들 사이에는 제기를 직접 만들어서 제기차기가 유행했었다. 과자 봉지, 라면 봉지, 비닐봉지로 각자의 취향대로 제기를 만들었다. 비닐봉지는 검은색밖에 없어서 인기가 없었다. 화려한 라면 봉지나 과자봉지가 제기를 만들면 알록달록 예뻐서 좋았다. 봉지를 네모 반듯하게 잘라서 몇 장 겹쳐서 가운데를 접어서 끝을 국수 가닥처럼 자른다. 다시 펴서 동전을 넣고 돌돌 말아서 묶고 예쁘게 펴주면 자신만의 제기가 된다. 동전은 10 원 자리를 넣든지, 100 원 자리를 넣을 수도 있고 500 원 자리도 넣을 수도 있다. 각자가 각자에게 맞는 무게가 있다. 그 무게에 따라 넣는 동전이 달라진다. 동전을 너무 많이 넣으면 발이 아파서 적당한 무게를 찾기 위해 몇 번을 풀었다 접었다를 반복한다. 제기 숱 많은 것이 좋은 사람 적은 것이 좋은 사람. 길이를 길게 했다가 짧게 했다가, 색깔을 맞췄다가 혼합으로 섞었다가 하면서 참, 많이도 만들었다. 제기를 만든다는것은 제기를 차는 만큼 재미 있었다. 각자가 자기만의 제기를 들고 모여서 제기차기를 했다, 쉬는 시간 10분이 너무 짧고 아쉬웠다. 차다가 숱이 떨어지고 맘에 안 들면 다시 만들기를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제기 만들기 장인이 될 지경이었다. 잘 차지고 고급스러운 제기는 친구들 사이에서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다. 제기차기 보다 제기 만들기가 성행했던 그해 겨울에는 과자봉지, 라면 봉지가 씨가 말랐다. 길에 나뒹굴고 아무도 관심 없던 봉지들을 제기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보이는 대로 다 모았다. 치열한 경쟁이었다. 과자를 사먹어도 버릴 수 없었고 과자를 사면 과자를 뜯기도 전에 봉지를 예약하기 바빴다. 길가에 굴러다니던 봉지란 봉지는 흔적을 감춰서 줍기도 힘들었다. 엄마한테는 라면 끓여달라고 졸라서 라면 봉지를 획득하기도 했다. 제기차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도 제기차기는 어렵다. 제기차기보다 제기 만들기에 더 집중했던 1인으로써 만드는 기술만 날로 날로 발전했다. 나만의 색깔, 나만의 모양, 나만의 제기를 몇 개를 소유하느냐가 행복지수도 올라갔다. 봉지가 흔하지 않았던 우리보다 더 윗세대는 잡초를 뽑아서 뿌리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찼다고 한다. 주위에 쉽게 구해서 찬 바람을 이기며 놀았던 시절이 문득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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