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가 1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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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기로운 민정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겨울비는 스산한 마음이 든다. 우산을 펴고 걷고 싶어 진다. 도시는 겨울잠이라도 자는 듯 조용하다.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가뭄에 콩 나듯이 보일뿐이다. 가로수 플라타너스는 마른 잎을 아직도 붙잡고 있다. 어느 도시는 낙엽이 떨어지기도 무섭게 쓸어버린다. 가을 정취를 느껴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지금, 여기는 커다란 플라타너스 이파리가 발길에 밟힌다. 낙엽 냄새를 맡아보려고 깊은숨을 들이쉬어본다. 축축한 비 내음이 더 진하게 코 점막을 점령할 뿐이다. 계절마다 비는 내리는데 이 겨울에 내리는 비는 다르게 느껴진다. 같은 날씨, 같은 분위기, 같은 빛깔로 나를 찾아오는데, 겨울비는 다른 맛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건 다 좋다. 눈과는 또 다르다. 발길에 차이는 낙엽을 밟으며 '낭만'이라 부르고 싶다. 가을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게 준비 없이 보내서 아쉬웠다. 이렇게 낙엽을 밟을 수 있어 좋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고 싶어 발걸음 속도를 늦춘다. 빗방울이 우산에 떨어지는 소리가 마음을 두들긴다. 오늘은 마음이 가는 대로, 마음 따라 걷고 싶다. 굳이 목적지를 정하고 싶지 않다. 젖은 낙엽을 밟으며 느린 걸음 끝에 영화관이 나온다. 너무 오랫동안 오지 않은 듯하다. 스산한 이 마음을 달래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매표소 앞에서 어떤 영화를 볼까 고민하지 않기로 한다.

나에겐 영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다. 어떤 영화가 개봉했는지, 어떤 영화가 재미있는지, 이 시간에 상영하는 영화가 무엇인지, 만화영화도 좋을 것도 같다. 그냥 기다리지 않고 어떤 영화를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가장 먼저 상영하는 영화를 검색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좌석표를 구매한다. 오랜만에 찾은 영화관은 많이 고급스러웠다. 작은 의자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답답했던 영화관이 아니다. 불편하지 않다. 안락한 자세로 편하게 볼 수 있어 마음에 든다.

영화는 저승에 있던 엄마와 이승에 있는 딸 이야기다. 엄마랑 친하지 않은 딸, 엄마랑 가슴 따뜻하고 재미있는 추억보다 상처투성이뿐인 추억이 전부다. 엄마는 나쁜 기억은 다 잊어버렸다고 하지만, 딸은 고스란히 남아 있어 괴롭다. 영화는 웃음을 주기도 했지만 눈물도 쏟게 한다. 영화를 빌미로 그냥 울고 싶다. 펑펑 쏟아져 내리는 눈물을 일부러 닦지 않는다. 캄캄하고 주위에 사람이 없어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 눈물을 맘껏 쏟아내도 아무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영화 속에 내가 들어가 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니까 속이 시원하다. 기분이 가뿐하다. 울고 나면 나락으로 떨어져 더 우울해서 울음을 피한다는 사람도 있다. 나는 오히려 더 개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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