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을 100-31

#책과강연#백백글쓰기#14기#삼겹살

by 향기로운 민정

TV 화면에 핏기가 가득한 소고기를 맛있다고 먹는다. 피가 질질 흐르고 있는데 맛있다고 먹는 모습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1인이다. 생으로는 채소만 먹는다. 소고기도 푹 익혀야 먹는 나를, 사람들은 무슨 맛으로 먹느냐고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식성이라 한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 피가 좌르르 흐르는 육류를, 남의 살 같은 생선을 도저히 먹을 용기가 안 난다. 함께 식사하려고 메뉴 선정하는 과정에서 날것을 못 먹는 나 때문에 , 먹을 것이 없다는 지인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 후 몇 가지는 눈물을 머금고 수용했다. 아무리 생각하고, 살펴보아도 더 이상은 수용할 음식이 없다. 소고기도 바사삭 익히는 것이 좋다. 고기는 쌈과 밑반찬이 잘 나오는 곳이 좋다.

언젠가 3명이서 삼겹살을 먹었다. 고기가 구워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바삭하게 잘 구워진 고기가 보이지 않는다. 손에는 쌈 두 장과 밑반찬을 미리 올려 놀고 기다린다. 불이 약한가 의심을 해본다. 불은 최대의 화력이다. 손위에 쌈이 민망해서 고기 없는 쌈을 입에 넣는다. 너무 일찍 쌈을 준비했던 것 같아서 이번에는 살짝 뜸을 들여본다. 고기가 살짝 익을 때쯤 쌈을 준비한다. 찜해둔 그 고기가 없다. 내가 동작이 느려서, 고기가 타기 직전이라 가져간 줄 알았다. 할 수 없이 빈 쌈을 먹어야 한다. 다시 가장 빨리 익을 것 같은 고기를 눈으로 찜한다. 이번에는 고기를 먼저 젓가락으로 집어 들고 쌈을 준비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고기 한 점은 세상을 얻은 듯 기쁘다. 계속 먹을 줄 알았던 고기는 그 후로도 몇 번을 고기 없는 쌈을 먹어야 했다. 조금만 익으면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고기를 다시 찜 해놨는데, 옆 사람이 집어가 버린다. 뒤집을 줄 알았는데 입속으로 들어간다. 다른 삼겹살을 탐색한다. 조금만 더 익으면 먹으려고 마음먹는다. 샐러드 한 번 먹고 봤는데, 없어졌다. 곧 익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쌈을 준비한다. 손위에 덩그러니 올려져, 고기를 기다리다 지친 쌈이 민망해진다. 그냥 밑반찬만 올려서 먹는다. 고기가 바사삭 익기를 간절히 기다려도 동작 빠른 양쪽 사람들 덕분에 내 차례는 어림도 없다. 오랜만에 내 젓가락에 잡힌 한 점이 반갑다. 세상 귀한 삼겹살을 얻은 듯 기쁘다. 가뭄에 콩 나듯 그렇게 고기 3점을 먹었는데 삼겹살 4인분을 다 먹었단다. 숫자를 일부러 세지 않았지만, 머릿속에는 3번 먹은 것이 전부다. 아직 간에 기별도 안 갔는데 3인분도 아니고 4인분을 싹쓸이했단다. 말도 못 하고 빈 젓가락만 입에 물고 말똥말똥 빈 불판만 바라본다. 나를 향해 아직도 배 안 부르냐며 묻는다. 포만감에 흐뭇한 표정이다. 삼겹살 3점 먹었다고 고백 아닌 고백을 한다. 그제야, 자신들은 배고파서 고기에 핏기만 사라지면 쌈도 안 싸고 정신없이, 고기만 먹었다고 실토한다. 호탕하게 웃는다. 쌈도 싸지 않고 고기만 먹는 사람을 처음 본다. 나만을 위해 다시 1인분을 주문해 준다. 자기들끼리 신나게 4 인분을 먹은 사실이 미안하단다. 나만을 위해 고기를 구워준다. 고기에 핏기가 사라지자마자 얼른 먹으라고 한다. 바사삭하게 구워져야 먹을 것이라고 했다. 그제야 4인분을 먹는 동안 3점밖에 못 먹은 이유를 알았다고 한다. 정신없이 고기를 먹었던 자신이 민망해서 호탕하게 웃는다. 40여 년을 살면서 삼겹살을 그토록 빠르게 해치우는 사람 처음 보았다. 내가 고기를 항상 부족하게 먹었던 이유를 알게 된 계기였다. 음식을 먹는 취향과 속도가 저마다 있음을 새삼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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