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다가 1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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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기로운 민정

창문 너머로 사뿐사뿐 내리는 눈송이가 예쁘다. 주섬주섬 옷을 겹쳐 입는다. 눈 맞이를 떠나고 싶다. 꽃송이처럼 예쁜 눈을 맞아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롱패딩에 털 부츠까지 야무지게 챙겨 입고 현관을 나선다. 밖에는 해거름이 찾아오고 있다. 아침부터 펑펑 쏟아지던 하얀 눈이 계속 녹이더니 쌓이기 시작한다. 눈 위에 찍힌 누군가의 발자국에 살얼음이 얼고 있다. 주변을 살펴보니 마당비가 빌라 입구 옆에 세워져 있다. 갑자기 눈을 쓸어보고 싶어졌다. 빌라 현관에서부터 앞집 할머니네 대문까지 빗자루 자국을 냈다. 눈 위에 커다란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된 기분이다. 잘 그린 그림은 아니고 추상화라며 혼자 우기면서 뒤돌아본다. 눈이 계속 내리고 있는 중이라 금세 흐릿해지고 있다. 골목길 위에 자동차 바큇자국 두 줄 따라 쓸어놓는다. 길 위에 내 맘대로 그림을 신나게 그리고 나니 기분이 좋아진다. 계속 내린 눈으로 희미 해진 빗자루 자국을 선명하게 그리며 되돌아온다. 현관까지 오다가 입주민을 만났다. 창피해서 뒤돌아서서 고개를 푹 숙이고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날궂이 하는 여자를 처음 보나보다. 뚫어지게 쳐다보다 지나간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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