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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기로운 민정 Jan 16. 2024

닭,  그 많은   (2)  100-65

#책과 강연#백백글쓰기#14기#닭#노계

          3  닭 폭행 사건

우리 집 마당에는 자유롭게 마당 구석구석을 휘저으며 다니는 닭 가족들이 모여 살았다.  아침저녁으로 모이를 주는 것은 나의 몫이다. 모이를 뿌려주면 엉덩이를 흔들며 달려온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기가 막히게 알고 달려오는 것 보면 기특하다.

수탉은 공격성이 다분한 녀석이다. 내 무릎뼈를 쪼아서 피를 보게 했다. 아침저녁으로 모이를 주면서 "내가 너희들 주인이라고 교육을 시켰건만, 녀석은 쪼아대는 버릇이 나아지지 않는다.  더 맛있는 모이를 따로 주며 아부도 했지만 부질없다.  그새 다 잊고 달려와  무릎뼈를 콕콕 찌르며 덤빈다.  너무 잘 먹고 활동량이 많은 수탉은 덩치가 컸다. 조그마한 내가 수탉이 보기에도 우습게 보이나 보다. 녀석에게 공격당한 무릎 부위는 핏방울이 맺히고 멍이 들었다. 눈물을 쏟아낼 만큼 아프다. 너무 아파서 걸음도 걷기 힘들다. 발자국 소리도 없이 뒤에서  달려오기에 꼼짝없이 당해야 한다. 무릎을 공격하면 얼마나 아픈지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마치 급소만 공격하는 무림에서 온 수탉 같다. 언제나 무릎뼈만 공격하는 수탉이 얄밉다.  순식간에 2~3번씩 쪼아대며 날뛰다가 결국엔 잡혀 먹히는 이유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괘씸한 ‥.

암탉은 마루를 깨끗이 닦아 놓으면 바로 올라와서 똥 싸고,  발자국을 남겨두고 내려간다. 내가 마루 닦고 있는 줄 귀신같이 알고 달려온다. 내 수고를 허투루 보이게 하는 일등공신을 세운다.  도장처럼 찍어놓고 도망가는 암탉 덕분에 마루를 닦아도, 닦아도 표시가 안 난다. 암탉과 수탉에게 정기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  닭 폭행 사건 ‥이라고 해야 하나!


4  노계 맛

아버지 형제들이 가까이 살다 보니 고만고만한 사촌들도 한자리에 모이는 건 자연스럽다. 고모네 집 주위에서 놀다가 어슬렁 다니는 닭 한 마리를 발견한 오빠들. 즉흥적으로 잡아버린다. 시골에서  닭 잡는 모습을 자주 보아 오던 오빠들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나 보다. 어느새 솥에 넣고 끓이고 있다.  백숙을 먹겠다고 다른 음식을 줘도 거절하면서  배고픔도 참고 기다렸다. 팔팔 끓는 백숙을 먹겠다고 사촌들이 모여 앉았다.  닭다리를 잡고 호기롭게 뜯는 오빠 표정이 이상하다. 별수롭지 않게 너도 나도 먹기 좋은 닭살을 씹는다. 정녕 살을 씹었거늘, 고무줄 같다. 고무줄보다 더 질긴 살코기는 처음이다. 이도 안 들어가는 닭고기 살을 다시 내려놓으며 실망한다. 설마, 설마 했지만. 역시나 질기다. 마침 그 옆을 지나가던 고모가 한 말씀하신다.  "노계라서 질길 텐데‥ 괜찮나?!" 대답은 처음부터 들을 생각도 없는지 그냥 휙 지나가신다. 그랬다. 오빠들이 간과 한 사실이다. 잡은 닭이 '노계'였다. 초보였기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다시 끓이기로 하고 물도 보충하고 더 끓인다. 이제는 됐겠지 했는데 역시나 질김은 변함이 없다. 삼세번이라고 했던가!  마지막으로 더 끓이기로 했지만 결국, 우린  노계의 맛은커녕. 먹지도 못하고 집으로 왔다. 노계의 끈질긴 맛을 처음 맛보았다. 허락도 받지 않고 닭을 잡아도 아무 말씀 안 하셨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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