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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기로운 민정 Jan 21. 2024

거기서 뭐햇!  100-70

#책과 강연#백백글쓰기#14기#짜장

주말에는 짜장라면으로 가볍게 별식을 즐기고 싶다.

"일요일엔 내가 요리사"

라고 하면서 짜장라면을 끓여 온 가족이 먹는 광고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수년이 흘러 역사 속에 묻힌 지금도 주말이면 왠지 짜장라면 생각이 간절해지는 건 아마도 광고효과인 듯하다.

처음 짜장라면이 나왔을 때, 너도 나도 열광의 도가니였다

 버스를 타고 시내까지 가지 않아도, 중화요리 집에 가지 않아도 먹을 수 있어서 기뻤다.  어른들 힘을 빌리지 않아도 쉽게 끓여서 짜장면을 맛볼 수 있는 라면이다.  용돈만 생기면 가게로 달려가서 바로 사 왔던 시절이었다.


 할머니 회갑을 위해 일주일 전부터 친척들이 모였다. 부엌에서, 마당에서, 마루에서, 방에서도 잔치 준비에 여념이 없는 어른 들이지만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은 몰려다니며 놀기 바빴다.  곤로가 있었지만 나무로 불을 지펴서 음식을 했다.  잔치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큰집 처마 아래는 나무를 가득 쌓아두었다. 장작도 산더미처럼 쌓아두었지만 지게에 올라갈 만큼의 나뭇단도 넉넉하게 준비해 두셨다. 나뭇단은 삭정이거나 싸리나무, 갈대가  많았다. 처마 아래에 세워 두고 필요할 때마다 가져가서 불을 지폈다.  


용돈이 생긴 오빠가 짜장라면을 사 왔다. 문제는 짜장라면에 비해  먹을 사람이 너무 많다.  잔치 음식을  준비하는 부엌이나 마당, 그 어디에서도 짜장면을 끓일 수 있는 곳은 없다.  사 온 짜장라면을 본 사촌들만 데리고 간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짜장라면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오빠 꽁무니를 졸졸 따른다. 뒤꼍으로 가더니 처마 아래에 일자로 세워진 나뭇단 몇 개를 비스듬하게 세워서 벽과의 사이에 공간을 만든다. 나뭇단 틈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옹기종기 앉아있는데 숨바꼭질하는 것 같다. 밖에서 우리가 보이지 않도록 나뭇단으로 잘 막는다. 오빠는 곤로를 가져오더니 냄비에 물을 받아서 왔다. 곤로에 불을 피워 물을 끓인다. 물이 끓는 동안 나뭇단에서 싸리나무를 뽑아서 젓가락을 만들어준다.  즉석에서 만든 나무젓가락을 들고 짜장라면이 익어가는 냄비만 뚫어지게 바라본다. 곤로에서 나오는 매캐한 연기쯤은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다. 콧구멍이 까매지면 어떻고. 눈이 매우면 어떠리. 연기에 매워 눈물을 훔치며  짜장라면이 빨리 익기만을 고대할 뿐이다. 몰래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긴장감이 백배쯤 오르는 것 같다. 비밀이 생긴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재미있다. 장라면이  더디게 익어가는 시간 동안 삼킨 군침이 한 바가지는 되는 것 같다. 긴 듯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 냄비 뚜껑을 열자마자 서로 먹겠다고 몸싸움, 젓가락 싸움이 난무한다. 그러나 큰 소리는 낼 수 없다. 소리 없는 전쟁을 치러 가며 맛본 짜장라면 맛은 신세계를 불러온다. 입가에 장소스가 시커멓게 묻었는지도 모르고 먹기에 바쁘다. 좁은 공간과 매캐함을 충분히 감내하고 맛보는 짜장라면 맛이란 ‥.

음식 하다가 나무가 부족해서 보충하려던 고모는 나뭇단을 들어서 가려다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우리를 발견한다. 갑자기 등 쪽이 환한 빛을 감지하고 모두가 뒤돌아본다. 서로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눈이 마주쳤다. 우린 얼어붙어 있는데 고모는 " 야앗!  너희들 여기서 뭐햇!" 입가에 짜장 소스를 묻히고 짜장라면을 몰래 먹다 들킨 조카들을 보고, 웃을 수도, 혼낼 수도 없었는지 잠깐 어이없게 바라보다가 나무만 가져다. 먹던 짜장라면을 빠르게 해치우고 있을 때 뒤늦게 소문 들은 사촌들이 달려온다.  잔치는 이미 끝났는데 ‥ 오빠는 이미 도망가고 없다. 맛본 자는 묘한 승리감에 뿌듯하고 맛보지 못한 자는 서러움이 북받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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