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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스티스 Oct 31. 2023

결혼기념일에 김치볶음밥

얼마전 주말은 결혼기념일이었다. 이제 갓 6개월을 넘긴 둘째와 툭하면 떼를 쓰기 시작한 첫째를 데리고 어디든 가볼 의지였다. 기념일 전날까지만해도 맘카페와 구글지도를 뒤져보며 장소를 물색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첫째 아이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적당한 곳을 찾지 못했고, 무엇보다 아이 둘을 데리고 땀을 뻘뻘 흘리며 다닐 자신이 없었다.

나들이를 하지 못했다고 해서 우중충한 기념일을 보내고 싶진 않았다. 아침부터 외출을 할 것이냐, 어디를 갈 것이냐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시간은 건너뛰는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나는 내 눈치를 보고 있는 남편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 오늘 서로 가장 좋아하는 요리 만들어주기로 하는건 어때?”


남편의 넘버원 페이보릿은 김치볶음밥이다. 기념일에 먹기엔 매우 평범한 음식이긴하지만 그는 김치볶음밥이라면 언제든 오케이다. 조리법은 간단하지만 맛있게 만드는 건 은근 어렵다. 입맛이 까다로운 남편에게 좀더 특별한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주기 위해 유튜브 검색을 마쳤다.


나는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해외살이를 하면서 맛있는 짜장면집을 찾지 못해 늘 아쉬운 터였다.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어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지난번에는 그냥 사먹자고 응답했던 남편은 이번에는 한번에 오케이 사인을 날렸다. 오늘은 기념일이기도 하고 요리는 나들이라는 미션보다는 그의 적성에 맞는 일이니까. ‘알겠다’는 그의 대답에서 흥얼거림이 느껴졌다. 나는 곧바로 첫째를 데리고 한인마트로 달려갔다.


남편은 오만하게도 레시피도 보지 않고 몇번 뚝딱뚝딱하더니 짜장면을 만들어냈다. 맛은 꽤 그럴싸했다. 한국에선 사먹는게 젤 싸다며 집에서 쉬이 시도하지 않을 요리였을테지만 여기선 다르다. 짜장면 한 그릇에 족히 2만원은 드니 집에서 해먹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짜장면 한 그릇을 다 비운 테이블 정리하고 곧이어 지난주에 사놓은 진한 초코 케익을 꺼냈다. 짜장 소스를 가득 묻힌 아이의 입꼬리가 다시 한번 신이나 실룩였다. 문득 어느 연예인이 한 인터뷰에서 밥 먹고 초코우유를 먹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라고 한 얘기가 떠올랐다.


다같이 낮잠에 들었다 눈을 떠보니 아직 저녁 6시였다. 일몰 시간까지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뭐라도 더 해야할 것 같은 조급함이 들었다. 놀이공원 폐장시간을 몇분 앞두고 뭐라도 더 타야할 것 같은, 아마존 프라임데이 마감시간을 앞두고 뭐라도 더 담아야할 것 같은 그런 조급함. 이런 기념일의 묘미를 좀더 느끼기 위해 우린 밤 드라이브를 가기로 했다.


외출을 달가워하지 않는 아이를 겨우 달래 카시트에 태우고나니 어두워진 밤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그냥 집에 있는 편이 나을뻔했나. 뒷좌석에서 훌쩍이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니 후회가 밀려 들어왔다. 마트에 가는 길 내내 노심초사했다. 이런 불편한 마음으로 있으면 상황이 나아질 것처럼.


저녁 시간이라 한산한 마트에서 신나게 쇼핑을 했다. 가장 맛있어보이는 딸기케익을 골라담았다. 아이는 언제 울었냐는듯 카트에 앉아 꺄르르 웃고 콧노래를 불렀다.


집에 오자마자 케익을 꺼내 초를 꽂고 불을 붙였다. 우리의 기념일이었지만 초를 부는 것은 아이의 몫이었다. 아무리 불어도 불이 꺼지지 않자 아이는 케익 앞으로 서서히 다가와 바람을 후후 불어댔다.


“앗 뜨거.”


뜨거운 열기에 아이의 긴 속눈썹이 살짝 타들어간 것이었다. “어머, 어머!”


길고 예쁘게 뻗은 아이의 속눈썹 일부가 가루가 되어 떨어졌다. “어머, 세상에”를 연신 외치는 내 옆에서 남편은 털은 다시 자라니 진정하라고 했다. ‘그래 내가 호들갑을 떨면 아이는 불안해할테니 진정하자.’


아이들을 재우고 침대에 누워 조용히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호들갑 떤다며 핀잔을 줄 남편 몰래 ‘불에 탄 속눈썹’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런 걱정을 하며 검색에 몰두하고 있는 내 자신이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별일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호들갑을 떨며 걱정의 터널로 들어가고 싶어한다. 그렇게 걱정을 한 차례하고나면 불행을 쫓는 의식을 치른듯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낮에 마신 커피 탓인지, 호들갑 탓인지 몸은 침대 위에 안착했지만 마음은 붕 떠있는 느낌이었다. 이날 하루를 잘 보내기 위해 아침부터 애를 써댄 탓일까. 조금 피곤한데 다행인, 타들어간 아이의 속눈썹이 속상하면서도 훗날 오늘을 기억하면 그땐 또 웃을 수 있을것 같아 충만한, 쓰기도 하고 달기도 한 기분.


이런걸 무슨 감정이라고 해야 하나. 소소한 행복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지만 일상사 웬만한 일들을 모두 행복으로 미화하고 싶진 않았다. ‘사는 맛’이라고 불러볼까. 이 말이 좀 더 와닿았다.


살면서 기쁘고 즐거운 일들이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이런 묵은 지 십년은 넘은 된장같이 깊고,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 같은 묵직한 감정을 인지한 건 처음이었다.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의미일까. 걱정이 팔자라고 나를 놀려대는 남편과 하루에도 수십번은 내 맘을 들었다놨다 하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일까.


어떤 예감이 들었다. 이 ‘살아있는 맛’이라는 묵직한 감정의 덩어리가 나를 오랫동안 지켜줄 것 같은 좋은 예감. 사소한 불안에 떨 때마다 ‘너는 우리 무리의 일부야’라며 그 불안을 집어삼켜줄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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