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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스티스 Aug 18. 2023

아이 없이 살 수 없는

나의 날들(feat. 손편지)

한국에서 반가운 편지가 날아왔다. 얼마만의 손편지인가. 손편지를 받은 것은 약 4~5년 전, 역시 같은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해외에 살다보니 무엇이 되었든 한국에서 오는 것이라면 무조건 버선발로 나가 맞이한다. 당연히 현실에서는 버선발이 아니고 맨발이거나 실내화 차림이다. 있지도 않은 버선을 찾다간 성질 급한 USPS 아저씨가 어느새 사라져 있을테니. 어쨌든 USPS 아저씨가 문을 두드리면 아이가 울어도 일단 눕혀놓고 뛰어나간다. 이번에도 그랬다.

 

손편지는 어떤 우편물보다도 귀하다. 발신자는 대학 시절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다. 나보다 여섯 살 어린, 내 동생보다 어린, 친구라는 표현보다는 벗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 이 친구는 두루두루 편지 쓰는 것을 좋아하는 다정한 사람인데 나에게도 그 다정함을 선사해 주었다.


지난해 말 한국을 찾았을 때 숙소에 초대해 아주 짧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진로 얘기부터 육아 얘기까지 꽤나 진지한 얘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아이돌 덕질 커밍아웃으로 서로 어이없어하며 헤어졌던 그날. 난 우리가 그렇게 실없이 웃으며 헤어져서 참 좋았다.


그날 서로 편지를 주고받자고 주소를 나눠가졌는데 이번에는 내가 먼저 보냈고, 그 친구가 답장을 한 것이었다. 예상보다 답장이 빨리 와서 놀라긴 했다. 역시 한국사람. 그리고 매우 기뻤다.


우리는 엽서에 편지를 썼다. 사실 엽서를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해외우편의 가성비를 따지려면 우리는 여러 장의 편지지에 글을 채워서 보내는 게 나았을 테다. 웃기지만 나는 몬터레이에서 산 엽서에 빼곡히 글을 채워 보냈고, 그 친구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엽서에 작은 글씨들을 빼곡히 채워 보내왔다.


지난해 만났을 때 내가 나인 그대로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는 문장이 나를 기쁘게 했다. 엄마와 배우자, 가정주부라는 정체성이 나를 가득 채우는 일상 속에서 지금도 어딘가에 조그맣게 남아있을 과거의 나를 기억해 주고 그것을 반가워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가.


우리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난 아직도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아이에게 느끼는 애착, 보호본능, 책임감, 기쁨, 죄책감, 원망 등 모든 감정이 사랑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고 있다.


과거 나는 내가 느끼는 사랑의 감정이 정확히 어떤 무게인지, 어떤 종류인지, 어떤 색깔인지 알지 못해서 나는 표현을 주저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를 키우면서는 주저함이 없어졌다. 내가 그들에게 느끼는 사랑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서는 아니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이성의 회로를 거치지 않고, 그냥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나도 모르게.


둘째를 낳은 직후 나는 그 친구에게 엽서를 썼다. 나는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이 표현에 좀 더 익숙해진 것인지도 모르지만 주저 없이 사랑한다고 썼다. 여전히 그 표현이 사랑을 정의하는 거대한 스펙트럼 안에서 어디에 점을 찍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봇물처럼 나왔다.


그리고 그 친구가 내가 한 말을 듣고 기뻐해줘서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옳은 것인지를 열렬히 고민하는 그 모습과 그의 시간이 예뻐 보였다. 예쁘다는 말은 정말 이럴 때 써야 한다.


그는 임신과 출산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보지만 양육은 자신이 없다는, 출산을 해보면 양육할 책임이 생기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출산 후 지금까지 나의 경험에 비추어 이런 대답을 하고 싶다. 태어난 아이를 보는 순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사랑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고. 아이들 없이는 한순간도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그들이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주는 것 외에 더 바랄 게 없는 내가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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