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여자가 있다. 속에 있는 말을 제멋대로 내뱉는 사람. 속된 요즘 말로 개념 없는 사람이라고도 한다. 최근 우연히 알게 된 그 여자는 첫 만남에서부터 내 외모에 대해 거침없는 평가를 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옆에 손잡고 있던 둘째 아이의 이목구비가 엄청 진하고 예쁘다고 칭찬하더니 내 얼굴을 보고선 “엄마는 얼굴이 연하게 생겼는데 아빠 닮았나 봐요”라며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놓고 욕을 하는 건 아니지만 어딘가 묘하게 기분을 상하게 하는 화법이었다. 그 이후로 우연히 동선이 겹치면서 우리는 자주 만나 인사를 나누게 됐다. 그때마다 그 여자는 일관된 화법으로 나의 기분을 은근히 어지럽혀놨다.
마주치는 횟수가 쌓이면서 나의 스트레스도 쌓여갔다. 피하려고도 해 봤지만 저녁 식사 후 아이와 산책을 나가는 길에 꼭 한 번은 마주쳤다. 산책을 안 나가는 수밖에 없는데 저녁 산책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어느 저녁 여느 때처럼 산책 중 학교 앞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둘째 아이와 공놀이를 하던 중 아이가 지나가던 강아지에게 관심을 보이느라 잠시 자리에서 벗어났다. 마침 길을 가다 우리를 본 그 여자는 “아이가 공놀이가 영 재미가 없나 봐요”라며 또 무심하게 말을 던지고 갔다. 아이가 한참 재밌게 놀다 잠시 한눈을 판 것뿐인데 그런 소리를 들으니 맥이 빠졌다. 순간 다시 고개를 들어 그 여자의 얼굴을 봤다. 아무런 생각이 없는 표정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 여자는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들을 필터 없이 그리고 악의 없이 내뱉는다는 것을. 의도 없이 안부처럼 던지는 말들에 나 혼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의도를 되짚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문득 개념 없는 그 여자가 부러워졌다. 저 여자 속병은 없이 살겠구나 싶었다.
그동안 개념 있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마음에 꼭 붙들고 있었던 조바심들을 들여다봤다. 아이 친구 엄마들과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 혹시라도 말실수를 하지 않았나 몇 번을 되새김질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시댁 부모님과 만나는 자리에선 아예 말을 아끼는 게 상책 같아 묻는 말에만 대답하는 며느리가 돼 있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들과도 예전처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렵다고 느꼈다.
관계에서 실수하는 것이 두려워 지나친 예의를 가장한 선긋기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20대에만 해도 나는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속에 있는 이야기를 자유롭게 말하는 편이었다. 내가 거침없이 얘기를 할 수 있으니 남들의 말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소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일을 꽤 잘하는 사람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어느새 조바심이 많은 사람이 돼버렸다. 새 환경 속에서 눈치 없는, 배려 없는, 예의 없는, 한마디로 개념 없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피하고 싶어서 조바심이라는 방어막을 세워온 것이었다. 개념 없는 여자라는 비난을 받는 것보단 관계에 선을 긋고 사람들과 멀어지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던 것 같다. 요즘 세상에서는 ‘개념 없는 사람’이라는 비난보다 무서운 말은 없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공허하고 갑갑해졌다. 제멋대로 말하고 다니는 그 여자를 만나면서 내 공허함이 더 잘 보였다.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만남을 두려워하는 내가 보였다.
아이 친구 엄마들 앞에서 친구들 앞에서 세상 경우 바른 사람인척 지내왔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 경우 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했고 관계는 스트레스가 되어 돌아왔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저 좋아하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뿐이었는데 말이다. 개념을 챙기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생각보다 컸다.
당분간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예의 따위, 개념 따위 미국 데스밸리 깊은 어느 골짜기에 달려가 던져버리고 싹수없는 그 이웃 여자처럼, 딱 그 여자처럼 당분간 살아보기로 한 것이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개념 있는'의 기준이 높아서 그 높이만 살짝 낮추면 해결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 역시 쉽지 않으니 극단적인 시도를 해보기로 한 것이다.
내 멋대로, 내 감정과 생각에 취해 사람들을 대했을 때에도 내 곁에 남는 사람은 누가 있을지 보기로 했다. 가족을 제외한, 아직도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해 줄 타인이 있을지. 40대를 바라보고 있는 이 시점에서도 그런 친구를 만날 수 있을지 말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만남 끝에 자동응답기처럼 보냈던 ‘잘 들어가셨냐’는 매너 문자도, 수차례 반복해야 마음이 놓이던 감사 인사도, 선물을 받으면 폭탄을 손에 쥔 듯 안절부절못하며 서둘러 보냈던 답례선물도 하지 않기로 했다.
참고로 10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내 곁에 머물러주고 있는 친구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