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주인공을 꿈꾸는 가정주부
나는 지금 집에서 채도가 빠진 연분홍색 쉬폰 블라우스에 허리를 타이트하게 조이는 청바지를 입고있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이런 내 모습을 본다면 주저없이 어디 나갔다가 왔냐고 물어볼 것이다. 나는 외출하고 집에 들어오면 곧바로 잠옷이나 추리닝 바지를 찾는, 차림에 있어선 전형적인 실속파다. 최근 아이를 출산한 이후 줄곧 잠옷 차림을 유지하다가 아주 가끔 외출할 기회가 생겨야 그럴싸한 옷을 입어보는 생활이 이어지면서 이런 경향은 더 심해졌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집에서도 편안한 외출복을 입고 있는 장면이 많기도 하고, 일부 사람들은 집에서도 외출복을 선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마도 다수의 사람들은 홈웨어로 타이트한 바지와 소개팅에서나 입을 법한 쉬폰 블라우스를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요즘 나는 집에서 외출복을 입고 지낸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 하루 집에서 입을 옷을 고르는 일은 새로운 고민거리이자 즐거움이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가 잠에서 깨면 욕실에서 세수를 하고 선크림을 바른 뒤 옷장을 둘러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이의 간식이 덕지덕지 묻어도 아깝지 않은, 예쁘면서도 불편한 옷이 뭐가 있을까.'
외출복을 입고 집안 일을 하면 평소보다 빨리 지친다. 몸에 꽉 끼는 청바지를 입고 청소기를 돌리기도 하고, 힙을 단단하게 감싸는 스커트를 입고 쪼그려 앉아 아이의 엉덩이를 씻긴다. 팔이 잘 올라가지 않는 셔츠를 입고 선반에 반찬통을 올려넣고 나면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다.
집에서 외출복을 입기로 결심한 것은 어느 블로그를 읽고 충격을 받으면서다. 출산 후 몸매 관리를 위해 집에서도 청바지에 흰 셔츠를 입고 지낸다고 했다. 허리와 배를 단단하게 압박하는 청바지를 입고 밥을 먹으면 금새 배부른 걸 느껴 덜 먹게 될테고, 외출복을 입고 깨끗한 침대 위에 드러눕기 께름칙하니 앉거나 서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몸매 관리를 하는구나.' 감탄했다. 최근 모유수유를 줄인 탓인지 체중이 조금 느는 게 신경 쓰였던 데다 나름 재미도 있을거같아 한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한두번으로 끝날 것 같았던 외출복 입기는 2주째 이어지고 있다. 몸매 관리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 외 따라오는 이점을 조금씩 발견하면서 외출복 입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첫 번째 이점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루틴이 생겼다는 점이다. 아이를 출산한 이후 하루의 시작점은 아이의 울음 소리였다. 옷 갈아입을 새도 없이 하루가 시작됐고 아이가 잠들면 하루가 끝났다. 가끔 틈이나 샤워 후 옷을 갈아입는 것이 유일한 환복의 순간이었다. 그때에도 대충 손에 잡히는대로 잠옷바지나 편안한 추리닝을 입었다.
요즘에는 아이를 재우고 잠옷으로 갈아입는 순간이 숭고하면서 짜릿하다. 아이가 잠들어야 하루가 끝나는 건 여전하지만 옷을 갈아입으며 육아 '모드'에서 휴식 '모드'로 전환하는 의식을 치른며 하루의 수고를 다독인다. 병원에서 일하시는 친정 엄마가 유니폼을 입을 때 번잡한 마음을 다잡고, 유니폼을 벗을 때 일터에서의 긴장을 내려놓는다고 하셨던 것과 흡사한 경험일까. 푸른 고양이 무늬가 은은하게 새겨진 부드러운 잠옷 상의에 머리를 집어 넣으며 오롯이 나만의 시간의 터널로 걸어들어간다. 그 순간 짧게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수없다. 이건 물론 육아모드가 일찍 끝난다는 전제하에.
두 번째 이점은 언제든 외출할 준비가 되어있기에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데 덜 주저하게 된다는 것이다. 늘 잠옷만 입고 있다보면 날씨가 좋아 나가고 싶어도 아이 옷, 내 옷, 아이 짐, 내 짐을 챙기다 보면 나가기 전부터 전투력을 모두 소진했다. 그러다보니 점점 외출이 버거워졌다.
세 번째는 갓 출산해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매우 중요한 점인데 바로 활력이 생긴다는 점이다. 아이가 태어난 후 돌을 거치기 까지 어떻게 우울을 피해 버텼는지 아무리 돌이켜봐도 의문이 든다. 지금도 여전히 언제 찾아올지 몰라 경계태세를 낮추지 않을 만큼 우울이 두렵다. 잠옷을 벗어던지고 외출복을 고르는 일은 일상에 새로운 즐거움을 더해준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롯이 나만을 위해 옷을 고른다. 그래서 부담도 없고 새로운 조합의 옷을 입어보는 재미가 있다.
불과 2년 전이었던 출근 시절엔 옷 입는 일이 스트레스였다. 아침마다 시간에 쫓기며 옷을 고르고, 사도사도 입을 옷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을 입고 우울한 출근길을 보내던 날들이 많았다. 이렇게 입어도 이상하고 어색하고 세상에서 제일 옷을 못 입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만 같아 자괴감에 빠진 적도 있다. 그러고보면 참 타인을 많이 의식하며 살았던 시절이었다. 당시엔 옷을 입는 일을 곧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로 여겼기에 집에서는 더더욱 잠옷 바람이나 후줄근한 티셔츠를 고집했을지도 모른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휴직을 연장하고 전업주부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지금, 타인을 의식할 기회는 줄었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도 사라졌다. 대신 '집에 있는 사람'으로서의 새 정체성을 정립하느라 애를 쓰는 중이다. 살림과 육아도 고귀한 일일테지만 집에 있는 내 자신이 여전히 낯설고, 하면 할수록 소외되는 것만 같다. 집에서 외출복을 입는다는 건 그런 나를 일상의 주인공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시도다.
한여름엔 얇고 시원한 잠옷 차림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 요 며칠 날이 더워져 자꾸만 가벼운 옷에 손길이 간다. 어쩌면 직장인들이 정장 바지를 입고 땡볕아래 건물숲을 걸을 때, 살이 비치는 면 파자마를 입고 집안을 누비는 것도 지금 내가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일테다. 그러면서 딱딱한 구두에 발을 밀어넣으며 현관문을 나서던 남편 생각도 잠시 하고 말이다. 이번 여름은 때로는 잠옷 차림을 한채로, 가끔은 외출복을 입으며 보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