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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담마 Nov 12. 2019

하루키가 쓰는 법

이야기를 담아두는 서랍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었다. 2016년에 읽고 3년만에 다시.


조금의 꾸밈도 없이 자기 중심, 자기 땅에 버티고 서서 할 말을 하고 있다. 세상 어디에도 적을 두지 않은 개인으로, 단독자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사람이란 인상을 다시 한번 받았다.


첫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남다른 면모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글을 읽다보면 내게 특별함이 없다해도 주눅들 필요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키가 작정하고 독자를 격려하는 건 아니지만, 나로선 힘을 얻었다.


단순하게,,

묵묵히,, 

묵직한 자기확신으로 할 일을 하면 된다. 그밖의 것은 하늘의 일이다. 


그는 이 책에서 실감과 체감이란 단어를 빈번히 사용하고 있다.

실감,, 실제 느낌.. 그에겐 이것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는 했다. '소설을 쓸 때 문장을 쓴다기보다 오히려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에 가까운 감각'이 있다고.


자기 안에 있는 것, 자기 몸에 체화된 것만이 진실이다. 자기 밖의 것은 거짓이다. 내 안에 없는 걸 있는 척, 못 가진 걸 가진척 할 때 작은 내 땅마저 잃게 된다.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할 필요없다. 


5장 자, 뭘 써야 할까? 에서 하루키가 글감을 다루는 방법이 인상적이다.


그는 자기에게  보여지는 자연과 사회, 인간관계를 망라한 현상을 관찰한다. 이때 이거다, 저기다 결론 내리지 않고 현상에 깃든 스토리 자체만을 마음에 담는다.


그의 뇌속에 이런 이미지를 담아두는 서랍이 있다. 이름하여 '뇌 내 캐비닛'. 구체적이고 세부적이며 흥미로운 이미지들,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이야기를 채집해 저장한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소박한 재료들로 가득한 '잡동사니 창고'인 셈이다.


그는 말한다.


캐비닛에는 방대한 수의 서랍이 있지만, 소설 쓰기에 의식이 집중하기 시작하면 어디의 어떤 서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머릿속에 서랍의 이미지가 자동적으로 떠올라 한순간에 무의식적으로 그 소재를 찾아냅니다. 평소에는 잊고 있었던 기억이 저절로 술술 되살아납니다. -p126


완전 천재 아냐? 나한테는 그런 서랍이 없잖아!


실망할 필요없다. '한정된 소재로 소토리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더라도 거기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그는 말한다. 


일상적이고 소박한 재료밖에 없더라도, 간단하고 평이한 말밖에 쓰지 않더라도, 만일 거기에 매직이 있다면 우리는 그런 것에서도 놀랍도록 세련된 장치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p129


'매직'이 무엇인지에 관한 설명은 없다. 유추해보자면 ''유효하게 조합된 맥락없는 기억'은 그 자체의 직관을 갖고 예견성을 갖게 된다'는 문장에 답이 있지 않을까. 나도 막연하게나마 이런 믿음을 갖고 있었다. 나 자신으로 내 땅에 발 딛고 서서 관찰한 이미지라면, 그러니까 남의 땅을 기웃거리며 채집한 소재가 아니라면, 그것들은 서로 어우려져 '직관'과 '예견성'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스토리의 올바른 동력'이란 믿음. 


자기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만이 음악이 될 수 있다. 하루키가 좋은 소설가 , 성공한 소설가인 이유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거짓이 없고 실체가 분명한 경지에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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