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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담마 Nov 12. 2019

글, 나를 비추는 거울

'합평'에서 얻은 깨달음

우리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하지만,
때로는 스스로에 대해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무심코 드러낼 때도 있다.
미묘하면서도 중요한 제3의 특성이
사소한 표현을 통해 거울에 비치듯 반사되는 것이다.     

--<인생을 쓰는 법>, 나탈리 골드버그
       


동화 합평 모임에 단편을 제출했다.  <내 이름은 큰새>라는 작품이었다. 다른 모임에 내보여 호평을 받았던 글이라 자신감에 차 있었다. 문장을 조금 다듬는 일 외엔, 손볼 곳이 없는 좋은 동화였다. 어젯밤까진.


합평이 끝나고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왔다.  내 글의 문제점이 만천하에 공개된 기분이었다.


많은 지적이 있었지만, 가장 충격적인 건 L이 한 말이었다.

"난 화가 났어요. 작가가 주인공 '큰새'에게 너무 큰 짐을 지워놓고 방치하고 있어요. 이건 아이에 대한 폭력이에요."


아이에게 큰 짐을 지워놓고, 결말에 가서  몇 마디 말로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작품을 마무리하고 있다는 거였다. 다른 이들도 L 에 동의했다.


G의 조언을 들을 땐 눈물이 핑 돌았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큰새'에게 필요한 건 마음을 터놓을 단 사람이에요."


모두들 내가 무슨 말인가를 하리라 기대하는 눈치였다. 난 합평 내내 입을 닫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음속에 숱한 생각이 들끓었다. 너무 깊고 아픈 것이라 누구에게도 내보일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내가 충격에 빠진 이유는  글에 대한 지적 때문이 아니었다. 글이 나를 비추는 거울이란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 모습이 그대로 '큰새'에게 투영되고 있었다. 그 아이는 나의 발가벗은 모습이었다.

'아, 내가 이런 짐을 지고 살아왔구나. 어린 나에게 나는 어른을 뛰어넘어 날아야 한다고 과업을 부여했었구나. 그걸 똑바로 하라고, 넌 할 수 있다고 엄하게 몰아세웠구나.'


내가 고독하고 외로웠던 이유 알 것 같았다.

'내 옆엔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없었. 기대 쉴 수 있는 언덕이 되어줄 단 한 사람이 없었구나.'

 

내가 본 적 없는 어른을 어떻게 작품에 그릴 수 있겠는가. '큰새' 가 혼자인 이유, '큰새'옆에 위안이 되어 줄 인물이 없는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내 옆에 할머니가 있었고, 동생들과 고모들이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우산이 되어주고 언덕이 되어 준 가족이었다. 내쪽에서 먼저 스스로를 차단하고, 마음의 벽을 쌓은 채 살아온 것이다. 내 마음 생김 그대로 글을 쓰게 되는 거였다. 


최근에 참여한 에세이 강좌에서도 이런 경험을 했다. 강사는 과제를 내주었다. 우리 도시에 얽힌 추억을 이야기해보라는 거였다. 저마다 돌아가며 준비해온 글을 읽었다. 진지한 표정들, 미묘하게 떨리는 목소리. 


그들의 문장에 귀를 기울이며 생각했다. 글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거울에 비친 건 상처였다. 즐거운 경험, 행복했던 추억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모두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글로 풀어내고 있었다. 


20대 여대생은 초등학교 다닐 때 따돌림을 당했던 기억을 말한다. 전기줄에 걸려있는 고장난 마우스에 자기 감정을 이입하고 있다. 마우스를 맞추려고 아이들이 오며가며 돌을 던졌기 때문이다. 40대 여자는 남편없이 아이를 낳아야했던 서러움을 들려준다. 시아버지를 10년 동안 모시다 떠나보낸 사연도 있고, 아무 연고도 없는 낯선 도시에서 외롭게 살았을 엄마의 삶을 돌아보는 글도 있다. 

 

상처가 자기를 좀 봐달라고 보내는 신호가 통증이다. 글을 쓰려고 펜을 들면 무의식이 우리를 통증으로 데려간다. 억눌려있던 것이 밖으로 드러난다. 공책이라는 거울에 상처가 비친다. 우리가 사소한 논평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그 말들이 우리 내면의 상처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이건 과장되었어. 여기 네 생각이 꼬여있네? 이 부분은 신파적이야. 


그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너의 상처를 바로 보라고. 상처의 본질을 보라고. 성장을 위해선 논평을 견뎌내야한다. 나와 같은 작가지망생에게 합평 모임이 필요한 이유다. 


저녁에 G 전화 했다. 좋은 동화인데 장점은 쏙 빼고 나쁜 얘기만 한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고 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지만, 그 마음 씀씀이에 고개가 숙여졌다. 아프지만 또 이렇게 한 걸음 나아간다. '큰새'의 마음을 알았다.  글을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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