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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담마 Dec 06. 2019

글쓰기 훈련 2

나는 ~을 기억한다

 -- <인생을 쓰는 법> 나탈리 골드버그


어머니나 이모, 할머니에 대한 기억 한 가지를 말하라. 이모에 대한 기억이라면 그분의 이름을 말하라.
"나는 글레이디스 이모를 기억하고 있다."와 같이 시작하면 된다.
상세하게 말하라.

다음은 내가 어머니에 대해 쓴 글의 첫머리다.

초조할 때 어머니의 왼쪽 입꼬리가 어떻게 되는지 기억한다. 어머니는 붉은색 립스틱을 자주 발랐는데, 쿠키를 먹을 때 부스러기가 립스틱에 달라붙곤 했다. 나는 언제나 어머니의 입술이 가장 먼저 기억난다. 어머니는 이가 큼직하고 입도 컸다. 어렸을 때 나의 유일한 소원은 어머니의 미소를 보는 것이었다.

                                                                                                        



나는 할머니의 냄새를 기억한다.


봄이거나 여름이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파란 치마를 입고 있었다. 바다색보다 옅고 하늘색보다 진한 파랑이었다. 그 치마는 '깔깔이'라 불리는 재질로 만들어져 촉감이 뻣뻣하고 까슬까슬했다. 폭이 넓었으며 길이는 할머니 복숭아뼈 위에서 떨어졌다.


할머니는 파란 치마로 바람을 일으키며 집안 곳곳을 돌아다녔다. 당신은 언제나 부산했다. 지금에서야 할머니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할머니는 우리 형제를 데리고 살았다. 부모님은 일 때문에 여러 도시로 옮겨 다녔다. 어린 나는 거기에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할머니와 사는 게 숨 쉬는 일만큼이나 자연스러웠으니까. 어떨 땐 사촌 형제도 우리와 함께 살았다. 고모와 삼촌 중 한두 명과도 같이 지냈다. 대가족 살림을 이어가려면 부지런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집을 쓸고 닦았다. 시장에 가고 쓰레기를 내다 버렸다.


어린 나는 게으른 사색가였다. 난 조용히 생각에 잠기거나 TV를 보고 싶었다. 식구 많은 집안에서 불가능한 꿈을 꾸고 있었던 거였다. 할머니가 내 주위를 왔다 갔다 하며 공기를 휘저어놓는 게 싫었다. 겨우 고요하게 가라앉혀 놓은 대기를 할머니가 흩트려트렸다. 그럴 때 파란 치마에서 할머니 냄새가 났다. 비누나 세탁세제에서 나는 향과 조금도 닮지 않았다. 화장품이나 향수 냄새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건 덜 말린 빨래에서 나는 냄새 같았다. 땀 냄새도 섞인 것 같았다. 말하자면 물걸레에서 나는 냄새와 비슷했다.


오늘날처럼 물티슈를 뽑아 쓰던 시절이 아니었다. 흘리고 쏟고 묻히고 튀고 할 때면 걸레로 모든 걸 닦았다. 노란 장판을 깔아놓은 방바닥도, 옷도, 손도 걸레로 닦았다. 심지어 할머니는 당신 입도 걸레로 닦았다. 우리도 걸레로 닦아가며 키웠다. 빨갛거나 노란 플라스틱 전용 그릇에 담겨, 문가나 마루 혹은 윗목에 놓여있던 물걸레. 사실 그건 걸레가 아니었다. 할머니가 수시로 헹궈대는 터라 지금 내 주방의 행주보다 더 깨끗했을 것이다.


물걸레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할머니 치마가 일으키는 바람에서 물걸레 냄새가 난다고 여긴 건 반발심 때문이었을까. 할머니와 사는 게 숨 쉬는 일만큼이나 자연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당신과 나 사이엔 매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책을 펴놓고 앉아있는 나보다 설거지를 도와주는 여동생이 할머니는 더 편했다. 나 같은 아이, 그러니까 예민하고 감성적인 성격에다 말수도 적고 생각만 많은 아이는 불편했다. 할머니는 나더러 움직이라고,, 쉽게 살라고,, 단순하게 살라고,, 치마로 바람을 일으키는 건지도 몰랐다. 그래도 나는 혼자가 되고 싶은 천성을 버리지 못했다.


할머니도 어떤 날은 꼼짝하지 않았다. 머리에 비단 띠를 두르고 드러누웠다. 주로 '삭신이 쑤실 때' 그랬다. 할머니가 말하는 '삭신'은 마음과 연관되어 있었다. 기분이 나쁘거나 화나는 일이 있을 때, 섭섭하거나 원통할 때 몸이 아팠다. 해야 할 일이 쌓여있는 걸 뻔히 보고도 누워있어야 하는 심정이 어땠을까.

 

파란 치마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 치마에서 나던 냄새는 진짜였을까. 물걸레에도 냄새가 있었을까. 할머니와 내가 다른 부류의 사람이란 생각을 하며,, 슬펐다. 이제 모든 것이 사라졌다. 나는 홀로 서재방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 남편이 방문을 빠끔 열어본 게 전부였다. 내 주위를 왔다 갔다 하며 바람을 일으킬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래서 행복한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빨갛고 노란 전용 그릇에 행주보다 깨끗한 물걸레를 담아놓고 살던 시절이 가버렸다는 사실이다.  




나탈리 골드버그가 어머니 이야기를 쓰고 나서 펜을 내게 넘겼다. 그 펜으로 나는 할머니 이야기를 썼다.


이제 당신께 펜을 건넨다..

당신은 무엇을 기억하는가.



질문 응용>>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라는 제목으로 10분 글쓰기 ('나는 잊어버렸다'로 시작하지 말것)


기억하지 못하는 어둠의 세계를 파헤치다보면 굉장한 에너지를 발견하게 된다. 오랜 세월 묻혀 있던 것들에 빛을 비추면 쩍 소리를 내며 금이 간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정돈하려고 한다. 그러지 마라. 정돈하려고 하면 글이 지루해진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
허공을 향해, 어둠을 향해, 기억하기 싫은 일들을 향해 도움을 청해야 한다. 
                                                                                       --<인생을 쓰는 법> 나탈리 골드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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