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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담마 Dec 15. 2019

작가지망생이 써야 할 책

글로 그리는 심우도(尋牛圖)

깨달음의 과정에 관한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무지에서 지혜로 나아가는 여정을 기록한 책을요.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고 앎의 세계 더듬어 나아가는 책.  

안갯속을 헤치며 산 넘고 물 건너 어딘가에 도달하는 책.


다 안다고 목청높이는 책 말고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하는 책 말고

슬프다고 징징대거나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주절거리는 책 말고,

깨달음을 찾아 용감하게 길을 나서는 책.


작가 지망생은 수행자여야 합니다. 우리는 낮은 지점에서 출발해 묵묵히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과정을 밟아나가는 것이 책이까요.


우리가 도달할 지점 출발점보다 높은 일 겁니다. 미미한 높이에 그칠 수도 있고, 아주 높은 곳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높이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나는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책을 원합니다. 내가 읽고 싶고 쓰고 싶은 건 그런 책입니다.


어떤 소재를 다루든, 무슨 주제로 엮든 깨달음의 여정에 관한 책이 될 것입니다. 독자는 목차만 봐도 알게 됩니다.


아, 이 사람이 이러이러한 징검다리를 건너 강 저편에 도달했구나.

아, 이 사람이 저러저러한 계단을 거쳐 올라갔구나.

여기서 좌절하네? 그러다 한 단계 올라가네? 다 왔다고 착각하네? 또 굴러 떨어지네?


그러나 주저앉지 않고 다시 출발하는 이야기. 다음 여정이 궁금한 이야기. 끝까지 따라 가보게 되는 이야기.


우리는 글로 그리는 심우도와 같은 책을 써야합니다.

심우도는 깨달음의 여정을 10단계에 걸쳐 그려놓은 불교의 선화(禪畫)입니다. 수행자가 소를 찾아나서는 여정을 10개의 그림에 담고 있습니다. 그림 속 소는 인간 본성의 상징입니다.


수행자는 고삐를 들고 본성을 찾아 나섭니다.(심우(尋牛)) 열성으로 공부에 매진하며 헤맨 끝에 어느 날 소의 발자국을 발견합니다. 본성의 자취를 어렴풋이 느끼게 된 것입니다.   

                              심우도 중 다섯 번째 단계목우; 검은 소를 잡아(득우) 길들이는 과정


어느날 동자는 소를 발견합니다.(견우)  그소를 붙잡아 고삐를 끼(득우) 으로 깨달음을 얻었을까요? 자는 마침내 목표를 이루었다 희열에 들떴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그가 잡은 건 탐진치에 물든 거친  (검은) 소였거든요.


그에겐 소를 다듬어 길이는 과정(목우)이 남았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에 도착하는 것으로 동자는 목표를 성취하게 될까요? 기나긴 깨달음의 여정에서 보면 고작 반 정도 온 겁니다. 소를 타고 가면서도 동자는 그 사실을 랐을 겁니다.


살아가는 매 순간 보고 배우는 일이 이러합니다. 책을 쓰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책 한 권으로 깨달음을 얻는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작가지망생은 열의에 차서 고삐를 들고 소를 찾아 선 사람입니다. 어느 날은 일이 다 된 것 같아 의기양양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보면 그건 미미한 성취에 불과했습니다. 소 발자국 비슷한 것 보 못하고 끝나는 경우가 대다수일 것입니다. 소를 붙잡긴 했으나 길들이 놓쳐버리 책이  끝날 수도 있습니다. 3단계를 나아갔는지 9단계를 나갔는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자기가본 곳까지여정을 솔직하고 상세하게 보여주면 됩니다. 나는 그걸 목표로  삼았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게 될지 몰랐습니다. 내가 어딘가에 도착할 수 있을지조차 확신이 없었습니다. 출발하고 3개월이 지났습니다. 끊임없이 주제를 찾고, '과정 일기'기록하며 걸어왔습니다. 지금은 숨을 돌리며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중입니다.  


큼직한 이정표가 몇 개 보였어요. 목차가 어렴풋이 드러납니다. 큼직한 이정표는 목차에서 하나의 장이 될 것입니다. 더 작은 이정표들이 발길 닿은 곳마다 세워졌어요. 이정표들이 각각의 '꼭지'가 될 것입니다.


책상에 가만히 앉아 글 쓴 게 아니구나.

실제로 나는 걸어왔구나.


출발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입니. 마지막 도착지에서 나는 또 얼마나 달라져있을까요? 가슴이 뭉클합니다.


수천 권의 책을 읽고 많은 글을 끼적이며 살아왔지만 이런 감정은 한 번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읽고 그렇게 쓰는 걸로 책의 세상을 다 안다고 여겼습니다. 자만이자 무지였습니다. 실제로 책 쓰기를 시도해보지 않았다면, 고삐를 들고 소를 찾아 나서 보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을 겁니다. 혹시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닙니까?


길을 나서보시라 권합니다. 책 쓰는 일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내 삶은 오늘이 어제 같았어요. 삶이 우울하고 짜증나고 화가 났어요. 이젠 살아갈 날이 미지의 기회 다가옵니다. 탐험해야 할 땅으로 여겨집니다.


삶에 기대 호기심 궁금증이 생겼어요. 탐험의 대상은 무궁무진합니다. 당신에게 끌리는 소재가 있다면 노트와 연필 들고 뛰어들면 됩니다. 간단합니다.


우리 함께 탐구합시다. 나와 타인, 나와 사회, 나와 자연, 나와 우주의 관계를 탐구합시다. 책을 쓰겠다고 길을 나서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삶의 비밀, 이걸 당신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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