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생산되는 귤 중 규격, 무게, 당도 수치가 규정된 범주에서 벗어난 귤은 '비상품 귤'로 구분되어 유통이 금지된다. 가정집은 물론이고 가끔 식당이나 가게에서도 아무나 집어가라고 놓아둔 귤 더미를 쉽게 볼 수 있다. 정작 돈이 되지 않는 갈 곳 없는 귤들이 제주도 사람들의 몫으로 고루 흘러드는 것이다. 매년 겨울 우리 집 부엌의 플라스틱 채롱에도 외할머니댁에서 가져온 귤로 비어 있을 틈이 없다. 우리 식구가 먹고 여기저기 나눠주는 속도는 촌에서 올라오는 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채롱 속의 썩은 귤을 솎아내는 일이 주말의 익숙한 일과가 된다.
모두 비슷한 시기에 수확한 과실일 텐데 어떤 것들은 너무 빠르게 썩어 버리고 어떤 것들은 수분이 다 빠져 쭈글쭈글해지도록 썩지 않는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여전히 노랑을 발산하는 귤 사이에서 시퍼런 곰팡이로 뒤덮인 귤을 건져낼 때면 마음이 편치 않다. 내 안에서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썩어버린 마음 하나가 푹푹 곪아가면서 마음 전체를 탁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 주변에 상하지 않은 귤들을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를 다루듯 조심스럽게 닦아내고, 차롱 안에 차곡차곡 다시 쌓아 올린다. 해마다 넘치는 귤에 대해, 모르는 사이 썩어버린 귤에 대해, 그 와중에 끝까지 벼르듯 자기 수분을 갉아 먹으며 겨울을 버티는 귤에 대해 오목한 마음을 벗어나 흘러내렸던 감각이 다시 정돈되어 내 기분까지 산뜻해진다.
일상의 사소한 정리 행위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근 일 년, 일을 그만두고 ‘시 같은 것’을 쓰고 살았다. 구체적인 결과를 염두에 둔 일이 아니었기에 불안하거나 조급하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되려 ‘잘 쓰고 싶다’는 추상적인 기준 속에서 반복되는 낙담과 가능성의 낙차를 견디는 게 조금은 버거웠다. 마음속의 것을 글로 꺼내는 일을 하면서도 정작 써도 괜찮은 것들만 골라내느라 사계절이 다 가도록 빛도 보지 못하고 썩어버리게 둔 것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올겨울 나는 온돌 바닥에 질펀하게 앉아 내 마음을 좀 솎아 내 보려고 한다. 겨우내 귤은 충분할 것이고 한번 깐 귤은 시든 달든 끝까지 먹어 봐야지. 내 글은 왠지 그런 이상한 오기를 더해야만 가까스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귤이란 자고로 혼자 먹는 과일이 아니다. 여러 사람과 둘러앉아 그 온기 속에 데워 먹는 게 제맛인 과일이다. 두 손이 노르스름해질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면서 말이다. 그래서 귤을 먹고 살쪘다는 얘긴 들어도 못 들은 척한다. 내 글이 귤을 닮았으면 좋겠다. 여기 올려두는 글들이 식당 한편에 바구니째 놓여 후식으로 누구나 집어 가는 이야기였음 좋겠다. 무겁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게 아무 때라도 집어 들 수 있는, 그러나 그 집어 든 손에, 마음에 살짝 물이 들게 하는 그런 은근한 글이 되길 바란다.
이런 설렘 가득한 시도가 그동안 혼자 쓰고 혼자 읽던 내 생활에도 생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라 믿는다.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스스로 만든 고립에서 풀려난다면 새 봄에는 분명 봄 다운 글을 쓸 수 있으리라. 올 겨울은 왠지 많이 추워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