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잘 사지 않는 내게 언니는 종종 옷을 선물해준다. 이번 겨울엔 올리브색 니트를 받았다. 옷에 대해서라면 편하면 장땡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는 내게도, 화사하면서 따뜻한 올리브색의 니트를 보자 야릇한 설렘에 가슴이 몽글몽글해져 버렸다. ‘얼마 후에 있을 전 직장 동료들을 만나기로 한 약속 자리에 입고 나가야지’라는 생각이 번뜩였다. 일 년 만에 다시 보는 사람들에게 너무 초라한 모습으로 비칠까 내심 걱정하고 있던 터였다. 뒤숭숭한 마음을 단속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소용없는 일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을 느낀다. 아직도 난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들려주지 못해 안달하는 나약한 인정 욕구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 변한 게 없구나, 여전히 못났구나 너.
잘 걸어 놓은 니트를 보면서 내가 올리브와 이토록 가까워본 적이 있었나 의문이 들었다. 올리브색 옷, 올리브색 가방, 올리브색 신발 같은 건 많이 봤지만 난 정작 올리브 열매를 실제로 본 적이 없다. 지중해의 태양 아래 올리브 나무에서 솟아오른 올리브 열매의 진짜 색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근데 나 이런 느낌 너무 잘 알 것 같다. 이건 마치 내가 글을 쓰기 전 다른 사람들의 증언에 의지해 세상을 살아온 방식과 유사하다. 백 명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백 명의 눈초리에 한없이 움츠러들었던 나날들. 매일이 얼마나 많은데 하루하루가 다를 바 없었고, 세상이 이토록 넓은데 나를 표현할 곳 없었다. 내 생각과 내 눈과 내 손끝이 내 것이 아니었던 시간들이었다.
퇴사를 하고 1년 넘게 혼자 세상을 유영하며 지내와도 세상이 바뀌거나 다시 태어나는 기적 같은 건 없었다. 다만 조금 더 넓게 나를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못났고 아마 앞으로도 못날 테지만 그런 내 부끄러운 모습을 구태여 쫓아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어쩌면 난 애초부터 내 스스로가 완벽해지길 바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럼, 없고말고. 그동안 내가 써 온 글들 또한 그런 일들이었던 것 같다. 내 안의 날 것의 부끄러움을 조금 단정하고 매끄럽게 포장해서 누군가의 마음에 잠시 얹혀 놓는 일. 저 이렇게 부끄러운 사람이에요, 호호. 깜짝 놀랐죠? 상자를 열어본 그 누군가에게 내 천연덕스런 웃음을 이어받은 미소를 띠게 하는 일.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지만, 쉽게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특히 겨울에 그런 게 많다. 노점상의 붕어빵, 일회용 손난로, 루돌프 사슴코... 훨씬 세련된 대체품이 생겨도 여전히 그 고유의 힘을 갖고 있는 것들 말이다. 그 은근한 존재감으로 지치지 않고 겨울을 조금씩 따뜻한 곳으로 옮기는 것들. 그리고 그것들 중엔 ‘내가 버리고 떠나온 나’가 있다. 버리고 떠나왔다고 생각했던 내 모습이 여전히 내 안 가장 오소록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가 백열등처럼 켜져 어두운 거리를 비춘다. 쓸쓸한 사람 지나갈 때 익숙한 고소함으로 불러 세우는 붕어빵 장수처럼. 나는 그동안 그런 노련함을 기르고 있을 뿐이었나 보다. 퍽 대단한 일도 아닌데, 그래서 정겨운 일이다. 붕어빵 테두리처럼 부드러움을 탄생시키는 여분의 단단함이 내 안에서 익어가고 있다.
내 고유의 감각으로 세상을 발견해 나가는 일이 생각보다 긴 여정이 되어가고 있다. 아니, 생각보다 너무 재밌어서 언제까지고 늘리고 싶은 여정이 되어버렸다. 혹여 내가 올리브를 찾으러 너무 먼 곳까지 가게 되더라도, 돌아온 겨울에 또다시 붕어빵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물론 가격은 좀 오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