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없지만 다 돌아다닌다. 뚜벅이여행자
밴프를 가는 사람들을 보면 종종 요호 국립공원, 재스퍼 국립공원도 함께 들리곤 하는데, 전부 멀찍이 떨어져 있는 곳이라 차가 없으면 다니기 힘듭니다. 따라서 유명한 루이스 호수라도 꼭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곳을 여행 계획에 추가를 했습니다. 밴프에서 호수로 갈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그레이하운드를 타거나, Brewster을 타거나입니다. 저렴하기는 그레이하운드가 더 저렴하지만 저는 Brewster을 선택했습니다. 전자를 타고 루이스 호수로 출발을 하면 바로 호수 앞(페어몬트 샤토 호텔)에 내려주는 게 아니라, 조금 떨어져 있는 곳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거리가 차로 가면 10분도 안 걸리지만 걸으면 장작 50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거리를 다니는 대중교통이 따로 없기 때문에, 추운 날 50분 동안 걷고 싶지 않다면 택시를 타거나 히치하이킹을 해야 합니다. 히치하이킹도 재미있을 것은 같지만, 추운 겨울에 큰 캐리어를 끌고 무작정 시도하기에는 무리이기에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Brewster을 예약했죠.
하지만 밴프에 도착해서 곧 후회를 했습니다. Brewster가 안 좋기 때문이 아니라, 호스텔 내 같은 방을 쓰는 사람 두 명이 자신도 똑같은 날 루이스 호수 쪽으로 출발을 한다며 태워주겠다고 제안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약한 버스는 환불 불가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 둘이 가는 곳인 루이스 호수 스키장이 페어몬트 샤토 호텔과는 조금 떨어진 곳이었기 때문에, 아쉬움을 머금고 버스를 탔습니다. 사실 이 버스를 예약하면서 속으로 '혹시 같은 호스텔 쓰는 사람이 나랑 같은 날 호수로 이동하지 않을까' 내심 생각하긴 했지만, 혹시 아닐 경우에 버스가 매진돼 못 가게 되는 가능성을 대비해 그냥 안전을 택했습니다. 직접 Brewster을 타본 결과, 버스는 매우 크고 매시간 다니기 때문에 성수기가 아닌 이상 매진될 일은 없어 보이더군요. 혹시 루이스 호수로 가고 싶은데 호스텔을 이용할 계획이 있다 하시는 분이 있다면, 버스를 찬찬히 예약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루이스 호수 근처에도 여러 호수들이 많기에 차가 있다면 이곳저곳 다니며 여유롭게 구경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차도 없고, 특히나 몹시 추운 겨울이라 주변 호수로 걸어가기도 힘든 실정이었기 때문에 저는 루이스 호수 근처에서 볼 것이 정말 이 호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곳에서 숙박을 하거나 오래 머무는 대신 단 몇 시간만을 보냈죠. 이곳 페어몬트 샤토 호텔은 숙박객이 아니어도 짐을 맡아 주기에, 캐리어를 놓고 설레는 마음으로 밖으로 나왔습니다.
'레이크 루이스'라고 하면 당장에 유키 구라모토가 피아노를 치며 나타날 것 같고 물 위에 온통 풍경이 아른아른 거릴 것 같겠지만, 아쉽게도 겨울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호수가 꽁꽁 얼어서 사방이 눈과 얼음으로 덮여있을 뿐입니다. 마치 겨울왕국에서 엘사가 얼린 아렌델 같았습니다. 겨울에는 호수가 얼어있어 여름보다 덜 예쁘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생각한 것과 너무 달라서 처음에는 약간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겨울 나름의 스포츠를 즐기고 있더군요. 페어몬트 호텔을 뒤로해서 호수를 바라봤을 때 왼쪽에는 사람들이 하키를 하고 있었고, 오른쪽에는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습니다. 장비는 전부 페어몬트 샤토 호텔에서 유료로 대여할 수 있습니다. 스케이트는 2시간에 13달러, 하키 스틱은 5달러로 저렴하지만은 않습니다.
막상 봤을 때는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얼음 호수이지만, 자세히 보다 보니 아름다운 풍경이 보였습니다. 바로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설산이죠. 밴프에서 저 멀리 보이던 설산이 눈 앞에 성큼 다가와있습니다. 호수의 바로 곁에 산이 있기 때문에, 원한다면 언제든 올라가 볼 수도 있습니다. 스포츠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은 산에 올라가 보기도 하고, 눈이 쌓여있는 호수 뒤편을 걸어보기도 합니다. 저는 이와 더불어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어 'Snowshoeing'이라는 액티비티를 했습니다. 우선 액티비티 자체에 관해 말해보자면, 페어몬트 샤토 호텔에서는 호수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열고 있습니다. 개썰매 타기, 마차 타고 호수 한 바퀴 돌기, 스노우슈 체험 등 여러 가지가 있고 호텔 사이트에 직접 들어가면 가격과 함께 설명이 나와있습니다. 사실 이중에 꼭 해보고 싶었던 건 개썰매였는데, 10만 원 돈 하는 가장 비싼 활동이기 때문에 마음을 고이 접었죠. 대신, 비교적 저렴하고 캐나다에 가면 한번쯤 꼭 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스노우슈잉을 선택했습니다. 3시간 체험에 65달러이고, 저는 혹시 몰라서 미리 호텔 측에 메일을 보내 예약을 했습니다. 막상 가보니 호텔에서 주최하는 액티비티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굳이 예약을 안 해도 될 것 같지만, 메일로 간단하게 내가 언제 몇 시쯤에 무엇을 하고 싶다고 얘기하고 카드 정보만 알려주면 되기에 오래 걸리지는 않습니다.
snowshoe는 캐나다에 원주민이 살던 시절부터 사용된 신발입니다. 눈이 많이 와서 밖을 돌아다니기 힘든 겨울에도 음식을 구하러 가기 위해 만든 것이죠. 면적이 넓어서 사람의 무게를 분산시켜주고, 눈길을 걸어 다녀도 발이 완전히 빠지지 않게 도와줍니다. 액티비티의 진행자 할아버지의 말씀에 따르면 스노우슈는 'very Canadian'합니다. 또 다른 Canadian 한 것으로는 메이플 시럽과 카누가 있다는데요, 스노우슈가 겨울을 위한 것인 반면 카누는 여름을 위한 것입니다. 90%가 물로 이루어진 캐나다에서 이동을 위해 사용돼 온 것이 카누라니, 정말 캐나다의 특성을 잘 담은 세 가지인 것 같습니다.
바지가 젖지 않게 겉에 스키복 같은 것을 입은 후 창고에 가면, 진짜 나무로 만든 신발과 중국산 플라스틱 신발로 두 가지 종류가 있었습니다. 저는 플라스틱 신발을, 진행자 할아버지께서는 나무로 만든 신발을 신으셨죠. 신발을 신고 나면 호수 바로 옆에 있는 산을 올라갑니다. 사실 등산을 하는 줄은 모르고 있던 터라, 산행을 싫어하는 저로서는 길을 오르자마자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사서 고생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몸소 느끼면서도 차마 낸 돈이 아까워 힘든 티를 낼 수가 없었죠. 중간중간 제가 말을 걸거나 질문을 하면 할아버지께서 대답을 하느라 멈추신다는 것을 알고 힘들 때마다 이것저것 질문을 하며 잠시 쉬어갔습니다. North face와 South face가 각각 의미하는 것, 지그재그로 산길을 타는 것을 switch back이라고 한다는 것 등 사소하지만 평소에는 알 수 없었던 잡다한 것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중간중간에 보이는 동물 발자국들을 보며 어떤 동물이 이곳을 지나갔는지 설명해주셨습니다. 가방 안에 산에 사는 동물들에 대한 책도 꺼내서 함께 보여주시더군요. 그렇게 힘들게 산을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에 갑자기 힘이 덜 들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안 보이던 경치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건너편에 손 닿을 정도로 가까이 보이는 산들, 발치에 쌓여있는 눈과 뻗어나가는 눈길, 겨울왕국에서 안나가 마시멜로우를 공격하기 위해 사용한 눈 덮인 커다란 나무 등등. 카메라가 젖을까 봐 가져가지 않은 게 천추의 한이 될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쌓였습니다. 발을 담그면 허벅지까지 빠질 정도였습니다. 안 그래도 기온이 낮은데 눈을 밟고 다니면 더 추울 줄 알았는데, 산 위는 생각보다 따뜻했습니다. 산을 오르느라 땀이 나서 그런 것도 있고 눈이 포근해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의 원래 일정은 3시간이었지만 2시간 정도 후 내려왔습니다. 돈이 아깝긴 했지만 산을 오르느라 힘든 상태였고 계속 갔다간 지칠 것 같아서 더 올라가자는 얘기를 하지 않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밴프 내의 많은 호스텔에서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스노우슈 프로그램을 하니, 만약 스노우슈를 해보고 싶다면 밴프 내에서 할 것인지 레이크 루이스에서 할 것인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호수의 입구에는 큰 얼음성이 있고, 조금 더 올라오면 ice bar가 있습니다. 바가 모두 얼음으로 되어있고 안에 들어가서 술을 즐기면 되는 형식이었습니다. 아쉽게도 그 날은 닫혀있어 겉으로 보이는 얼음조각만 구경하고 호텔로 돌아갔습니다. 호텔 내 1층에는 호수의 경치를 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저녁을 먹거나 티타임을 즐기면 좋다는 글을 많이 읽어 들어가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투숙객만 입장할 수 있다고 저지를 당했습니다. 대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지하의 다른 레스토랑으로 가라고 안내해줬습니다. 이 레스토랑 안에서 밖의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좌석은 소수인데, 당연히 이미 다 차있었기에 경치는 포기하고 음식을 즐겼습니다. 그닥 맛있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밴쿠버로 이동하기 위해서 9시 반까지 그레이하운드를 타러 가야 했는데, 앞서 말했듯이 택시를 타거나 히치하이킹을 하지 않는 이상 갈 수가 없어서 호텔에 택시를 잡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택시 서비스는 투숙객이거나 이곳에서 돈을 쓴 사람만을 대상으로 해주는 것 같더군요. 택시를 부르기 전에 제 카드 번호를 먼저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타게 된 택시가 Mountain Park인데,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크고 멋스러운 차가 왔습니다. 그리고 그 가격에 맞게, 13달러가 나왔습니다. 저와 한 승객이 더 탔는데, 거리에 상관없이 무조건 13달러인 것 같았습니다. 밴프에는 노란색의 Banff Taxi가 많이 있습니다. 밤에 택시를 이용한다면 미리 번호를 알아놓고 노란 택시를 타는 것이 가격 측면에서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그레이하운드 레이크루이스 정류장은, 전혀 정류장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갖춰져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같은 버스를 타러 온 사람이 들어와서 여기가 정류장이 맞냐고 물을 정도로 일반 도로처럼 생겼습니다. 카페에 들어가 있고 싶었지만 캐나다인지라 그 시간에 열려있는 곳이 한 건물 2층의 식당밖에 없었습니다. 식당에 들어가는 대신 1층에서 바람을 피해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이 버스를 타시게 되면 주의하셔야 할 점이, 버스는 시간에 맞춰 오지 않지만 만약 승객이 버스 타는 곳 앞에 서있지 않으면 그냥 간답니다. 그렇기에 늦게 오는 버스를 원망하며 끊임없이 밖을 내다봤습니다. 그렇게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밴쿠버로 향했습니다.
레이크 루이스에 대한 정보
호수는 빙하수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여름에도 차갑다. 호수 멀리를 쳐다보면 빙하가 있는데, 보통 안개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저녁이 되어 안개가 서서히 걷힐 때 운이 좋으면 보일 수도 있다고 한다. 루이스 호수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정보는 아니지만, 캐나다에는 어딜 가나 안개가 많기 때문에 이를 fog라고 하지 않고 비교적 밀도가 낮은 mist라고 부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