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자 점원의 책방 일지 1
동네 책방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냐고 아무도 내게 물어오지 않았지만 문뜩 궁금해진다. 내가 책방을 언제부터 좋아했더라. 책스타그램을 꾸준히 업로드하다가 독립책방 존재를 알게 되었다. 독립 책방이 근처에 있으면 자주 갈 텐데 SNS에서 보는 독립 책방들은 마치 관광 코스처럼 저 동네에 가면, 저 지역을 가면, 하고 표시만 했다. 그러던 찰나, 우리 동네에도 드디어! 책방이 생겼다. 불과 몇 백 미터 반경 안에 말이다. 당시 다니던 직장과 매우 가깝지만 내 생활권이다. 내가 다니던 직장은 임신하고 이사 온 후로 살던 동네에 있었고, 초등 고학년이던 소년의 학원 스케줄로 카페에서 기다림을 하던 내게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코로나19로 문 닫는 가게가 속출하는 시기에 책방이라니. 없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을까. 그저 소상공인을 대하는 마음이었을까 참새 방앗간 드나들듯(매우 올드한 표현인가?) 드나들었다. 그만큼 많이 드나들었다는 의미로 나를 책쇼핑 중독자로 이끈 곳이다. 커피도 맛있었지만, 비 오는 날만 주문할 수 있는 차가 아직 기억에 남는다. 책방은 그곳에 2년 머물렀다. 작은 동네(?) 책방이어서였을까. 책 읽는 사람이 줄어드는 탓인지 월세 걱정이 가장 큰 고민이었고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려 안타까웠다. 2년 동안 책 말고 책방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지 이 동네가 아닌 다른 동네로 옮겨갈 기회가 생겼다. 기존 책방 위치를 기준으로 하면 지상철(대구 지하철 3호선은 지상철이다)을 타면 30분 이상 가야 하는 거리지만 시간 나는 대로, 모임이 열리는 대로 다녔다.
사장님과 친해졌다. 책으로 이어지는 연인 1호쯤 되려나. 아마도? 그만큼 책 인연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이다. 책이 아니었으면 사장님의 존재를 평생 어떻게 알까. 같은 동네, 심지어 임신하고 아이가 4살 때까지 살던 집 바로 근처 살았어도 서로가 몰랐는데 말이다. 친해진 사장님과 나는 책방의 안위를 같이 고민하고 걱정했다. 책방에 손님이 한 명이라도 늘어날 수 있는 수단, 모임 웹포스터 만드는 고충, 사장님 술 취향까지 사적 영역부터 공적 영역까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이사 간 책방에서 자리를 다잡았으면 좋으련만 처음보다 더 낯설게 책방이 존재했다. 2년 동안 생긴 단골들이 이사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지만, 대중교통으로 30분 이상 걸리는 거리를 시간 내서 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매출을 떠나 어쩌면 사장님이 향수병에 걸렸는지 모르겠다.
다시 원래 있던 동네로 옮길 계획을 마음에 품고 계셨고, 실행력 좋은 사장님은 갑자기 책방을 계약했다고 알려왔다. 어머머!! 반가움과 놀라움 걱정까지 온갖 미묘한 감정이 뒤섞였지만 축하부터 했다. 청소하는데 도와줄 일은 없는지, 세 번째인 곳은 오래오래 할 수 있도록 무조건 돕겠다느니, 지치지 않게 몸 관리 마음 관리 잘하라는 내가 쏟아부을 수 있는 온갖 아첨과 입발린 소리를 했다. 급기야 한 달에 한 번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봐줄 수 있을 것처럼 나를 이용하라는 말까지.(하하하하 몹쓸 오지랖) 사장님은 이 말을 고이 간직했다가 수줍게 책방 봐줄 수 있냐는 문자를 보내왔다. 책방은 봐줄 수 있는데… 모카포트로 커피 내려야 하는데, 배울 수 있을까요? 아! 쉬워요, 쉬워. 하는 귀여운 말까지. 우리의 동행은 시작되었다. 동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 왜냐면 오늘 사장님께서 나를 부운영자로 임명했으니까.(하하하)
그러니까 오늘 부운영자로 임명되었다는 말은 내가 책방에 와 있다는 말이다. 어제 갑자기 사장님께 연락받았는데, 요상하게도 매번 약속이 없다. 아마 지금까지 한 번인가? 안된다고 고사했을 테다. 지금까지 몇 번 책방을 봤는지 모르겠지만, 10번이라고 하지 뭐. 그래도 높은 확률이니까. 책방 보는 건 재미있다. 작은 소망으로 책방을 꾸리고 싶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으니까. 실질적인 운영을 생각하면 용기가 안나 시도초자 못하지만(사장님의 실행력에 무한 박수다). 남편에게 말했더니 컨테이너 박스로 책방을 지어 준단다. 그 말에 시큰둥했지만 제주도 책방 중에 한 곳이 그런 모양인데 꽤 예쁘다. 그래서 남편에게 언제 지어줄 거냐고 물었더니 땅은 내 돈으로 사란다. 역시 꿈일 뿐인가.
회사에 출근하면 하는 루틴처럼 책방에도 루틴이 있다. 콘센트, 전구, 라디오며 전기제품을 켠 다음 모카포트 한 잔 내린다. 사장님께서 무한 커피를 보장했다. 한 잔이면 충분하다. 책방 사장님께서 인테리어며 소품 고르는 감각이 있다. 끌리는 잔에 커피를 따르고 사진 한 장 찍는다. 오늘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사진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그다음부턴 손님이 오길 기다린다. 책방 봐주는 것보다 손님이 안 오는 미안함이 크다. 나 때문에 손님이 안 오나 싶은 생각이 들고.
오늘 5시 반까지 손님이 없었다. 손님 한 명 없이 있다가 가겠구나 했는데, 밖에서 기웃하는 모습이 보인다. 감사합니다를 외치는 순간 커피 말고 차 주문 해주세요 하는 마음. 이유는 모카포트 안 씻어놔서. 차 준비하는 시간이 가장 짧으니까. 커플이 오셨고, 책 사진 찍는데 살짝 고민된다.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다행히 찍은 사진 책을 구매해 주셨다. 그것뿐인가, 편지봉투에 봉해져 있는 김소월 시집도 사셨다. 거기다 와인, 모카포트 커피 아이스까지. 와인 냉장고에 보니 두 종류 와인이 있는데. 하나는 사장님을 위한 와인 아니었나? 사장님께 전화하는 동안 결제를 미뤄두고 편히 있으라고 말한 다음 얼른 모카포트부터 씻었다. 사장님과 통화가 끝났고 화이트 와인과 냉장고에 있는 초콜릿까지 챙겨 드렸다. 아이스커피 주문하셨는데 따뜻한 커피가 나가서 다시 만들어 드렸다. 마음 같아선 뜨거운 커피에 얼음 띄워주고 싶지만 그러면 그 맛이 안 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시 만드는 게 정석이다. 남은 커피는 내가 마시면 되니까.
커플 손님께서 어찌나 소곤소곤 말을 나누는지, 불편해 보였다. 편히 말씀 나누라고 일러두고 나는 패드를 꺼냈다. 책방 봐주면서 와인 처음 팔아봤으니까. 이내 손님들이 나가셨고 가게 문 닫고 집으로 왔다. 오늘 사장님이 맥주(무알콜이다)도 한 잔 하라고 하셨지만 참았다. 내가 마시면 누구에게 파시려고요(하하하). 지난주 속초 여행 기념품으로 받은 청수(청포도 약주) 한 잔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