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자 점원의 책방일지 2
단골손님들이면 대부분 알고 계시는 사장님의 근황. 요즘 사장님께서 주말에 바쁘시다. 평소보다 내게 자주 연락 오는 이윤데 내가 사장님보다 먼저 말할 수 없으니 궁금해도 조금만 참으시라. 2주 만에 책방 문 열러 왔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오늘 10분 늦었다. 갑자기 남편이 내 차를 쓰자는 바람에 청소(남편이)하고 씻으러 간 남편을 기다리게 되었다. 10분 늦은 기분 탓인지 커피 말고 맥주가 당긴다. 목을 축여야겠다.
내가 문을 연 책방 ‘치우친취향’에는 주류를 판매한다. 와인과 무알콜 맥주. 지금 치우친 취향은 세 번째 공간이다. 이곳에서야 진정 정착한 느낌과 치우친 취향만의 분위기가 묻어 나오기 시작한다. 전부터 팔고 싶었지만 여건이 안 돼 팔지 못한 술을 이곳에서 팔 수 있게 되었다. 그 기쁨에 사장님께서 판매 금액 생각 안 하고 제가 좋아하는 와인으로 왕창 들였더니 너무 비싸네요, 하는 실소 터트릴 얘기도 해 주시고(재밌고 귀여운 사장님). 무알콜 맥주를 다양하게 구비하지 않지만, 여러 종류를 돌아가면서 하나씩 들인다. 지금 책방에서 파는 무알콜은 ‘제주누보’로 두 번째 판매다.
온라인에서 알게 된 책 인연 중에 몇몇은 현실에서 만났다. 내가 사는 지역이 아니라 작정하고 만나기도 하고, 블로그로도 이웃이지만 동네(넓은 의미에서) 이웃인 분도 있어 만나기도 했다. 오전에 블로그 이웃들 근황을 둘러보다가 동네 이웃인 동그라미 님 글에 댓글을 달았다. 오늘 책방 문을 여니 오시면 커피 한 잔 대접하겠노라고. 10분 늦은 나보다 먼저 오셔서 근처에서 살짝꿍 기다리셨다는. 아, 이러니 맥주가 당길 수밖에. 커피와 맥주를 테이블에 놓았다.
동그라미님과 치우친취향에서 두 번 만났다. 내 블로그에서 소개한 치우친 취향 글 보고 들렀다가 나도 있음을 알고 눈인사를 비롯해 머쓱하게 이야기를 나눈 게 처음이었다. 그리고 오늘. 블로그로 얘기를 종종 나눠서인지 근황 토크가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책모임도 같이 해본 사람처럼 술술 나왔다. 나의 속초 여행이 궁금하다는 말에 나는 동그라미 님의 치앙마이 한 달 살기가 궁금하다고 했다. 짧을 줄 알았던 내 속초 이야기 먼저 하자고 시작했다가 늘어지고 길어졌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바람에 동그라미 님 치앙마이 이야기는 듣지도 못하고 단골손님 등장으로 다음에 보자는 말로 헤어졌다.
단골손님은 치우친 취향에 와인을 보관해 두시고 이용한다. 책방에 와인 보관 서비스가 있고 정해진 기간 안에 소비하면 된다. 책방에 오셔서 와인을 말씀하셨고 토마토 갈릭 과자도 주문하셔서 같이 내드렸다. 단골손님은 옆 테이블에서 책과 와인을 즐기시고 나는 글을 쓰고 있다. 한 시간쯤 지나서 내 테이블에 놓인 빈 맥주잔을 보시곤 맥주가 있는지 물어보신다. 당연히 있다. 무알콜 맥주임을 한번 더 알려드렸고 추가 구매 하셨다. 곧이어 다른 단골손님 원 님이 들어오셨다. 치우친취향에서 함께한 책모임으로 친해졌고 집이 가까워 이곳에서 제1 단골이지 않을까 추측한다. 당연히 내가 있을 때도 오셨다. 퇴근하며 들르셔서 맥주 한 잔 해야겠다고 하셔서 감자칩과 함께 내드렸다.
그러면서 나도 맥주 한 캔을 더 꺼냈다. 맥주 두 캔을 마시며 책방을 지키고 있다. 곧 문 닫을 시간이다.
오늘은 맥주만 4캔 팔았고 2캔은 내가 마셨다. 손님이자 직원이다.
매출 영수증을 정리하는데 뭐지? 여기 책방인데? 싶다.
술과 함께 책 읽거나 글 쓰거나 그냥 쉬거나 하기 좋은 공간이다. 시끄럽지 않고 말 걸지 않지만 함께 하는 분위기로 둘러 쌓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