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보내기(당근 첫 거래)
우리 집은 일인 일방이다. 청소년은 그렇다 치고 부부는 라이프 사이클도 다르고 잠버릇도 매우 달라 같이 자기 힘겹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잠자는 방식이 매우 다름을 알았다. 임신하고 자는 게 너무 힘들어 자다가 일어나 다른 방으로 건너가 자야만 푹 잤다. 새벽에야 잠이 들게 이르게 되자 지각을 밥 먹듯 했다. 이제 우리는 각자 방에서 편안하게 잔다. 내 방은 청소년이 쓰던 방이다. 2층 침대가 있고(위층은 다락으로 쓰려고 창문에서 방문까지 통으로 2층을 만들었다.) 책장을 이 방으로 다 옮겨서 책으로 빼곡하다.
평일은 일어나자마자 아침 준비하기 바쁘지만 주말이면 빈둥거리며 누워 있는 방. 눈은 자연스레 책장으로 간다. 책장에만 책이 있지 않고 보이지 않지만 바닥(도서관에 나눔 할)에도 침대 위 어린이 밥상? 책상?(토마스 책상) 위에도 화장대 의자 위에도 넘치도록 책이 있다. 조만간 청소년 아버지가 책 좀 어떻게 하라고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아님 포기했을지도. 우리 집 청소기 담당은 청소년 아버지라 최소한 바닥에 나뒹굴게 하면 안 되니까.
어제 ‘차방책방’(대구 경상감영공원 근처에 위치한 책방)에 재주소년이 와서 노래도 부르고 책 이야기도 한다길래 신청했다. 근처 알라딘 중고서점도 있으니 책 좀 팔아볼까 하고 10권 골랐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책 처음 팔아본다. 버리고 나눠준다고 해도 지금까지 붙들고 있던 책은 여전하니까. 밑줄이 없어야 하고 내가 버려도 눈치채지 못할 그런 책을 고르자. 소설이나 에세이는 나중에 늙어서 무료할 때 읽을 책이라고 남겨둔다. 비문학 책에서 고르려고 비문학 칸을 본다. 여행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코로나19 시기에 여행 소개책 몇 권을 버렸다. 코로나19가 끝나면 정보가 많이 달라져 있을 거라는 혼자만의 예측으로. 개인이 쓴 여행책은 버리지 못하는 마음에 가지고 있다가 어제 과감하게 꺼냈다.
<빼빼가족, 버스 몰고 세계 여행>은 2015년 책이다. 10년이 다 되어간다. 2015년이라는 숫자에 ‘책에도 유효기간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솟는다.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 책은 초판 2013년 책이다. 도서관 첫 북토크 행사 정도로 기억한다. 모임에서 책을 읽었고 저자가 왔다. 당시 20대에서 30대로 갓 넘어갈 나이로 보이는 저자에게 질문을 했다. 심지어 나보다 어린데 생각의 깊이가 달라 놀랐다. 그 책도 집에 들었다. 저자 소개부터 몇 장 넘겨봤는데 재밌다. 다시 책장에 꽂아 둔다. 10권의 책을 차에 실었다. 애석하게도 어제 동성로(시내)에 가지 못했다. 재주소년보다 급한 일이 있어서 처음으로 신청한 북토크를 펑크 냈다. 아쉽다. 약속 펑크 낸 기분이라 불편하고.
어제 버리려고 했던 책이 자기 전에 생각났다. 밑줄이 많을 것 같아 버리려고 했는데 들춰보니 거슬릴 정도가 아니다. 당근이나 깔아볼까. 당근을 하지 않았다. 중고거래를 싫어한다기 보다 커뮤니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당근 한다고 집에 물건을 오히려 늘릴 것 같은 불안감도 들고. 봉부아 작가 블로그를 보면서 ‘당근, 나도 해 봐?!’ 싶었다. 친한 친구가 당근으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0권 넘는 책을 50만 원에 구입했다는 말도 들었다. 더구나 청소년 아버지가 당근에서 모집하는 모임 든 거 보고 희한해서 당근이라… 당근? 하며 마음이 술렁거리기도 하고.
오늘 일어나자마자 당근을 깔고 누워 책 사진 찍고 올렸다. 올리자마자 두 건의 대화가 왔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게 나 같은 사람인 줄 알았잖아. 청소년 아버지께 같은 사람 아니야? 하고 물어봤다. 아이디가 같냐고 묻는 사람. 당연히 아니지. 다른 아이디로 접속 가능하지 않을까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안녕하세요!
혹시 제가 받을 수 있을까요?
두 명 중에 가장 위에 있는 대화만 보고 거래를 하고 있는 중에 2분 먼저 온 대화창에 미안해진다. 바로 동네 이웃 같기도 하고. 그분께 관심 분야 있느냐고 오지랖 떨며 물었다. 정리할 책 많다고. 심리학 책에 관심이 있단다. 책을 찾아봤다. 줄만한 책 두 권이 눈에 띈다. 두 권 사진 찍어 보냈다. 오늘 저녁 받으러 온단다. 4권 순삭 나눔했다. 중고서점에 팔아서 책장 지키고 있는 것보다 한 번이라도 더 읽히고 소멸하는 게 책의 입장에서 낫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