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자 점원의 책방일지 3
2시부터 6시 반까지 주말 책방 운영 시간이다. 4시간 반 운영 시간 동안 많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올까. 테이블 두 개인 이곳에. 테이블 두 개라고 하니까 4명도 못 앉을 것처럼 들리겠지만 6명, 4명 앉는 공유 테이블이다. 그러니까… 빼곡히 앉으면 열 명도 앉는 공간이다. 만석을 꿈꾸나? 전혀. 드문드문 앉아만 있어도 사장님과 점원은 매우 흡족하다. 왜냐면 단 한 명도 오지 않는 날도 우리에겐 일어나니까.
오늘 첫 손님도 역시나 나와 단골 투 톱을 달리는(? 내 맘대로 투톱이라고 붙였다) *나 님이다. 투톱이라고 하기에 막강한 원톱 단골이다. 토요일 출근하는 그는 조금 이른 퇴근으로 2시 몇 분 전에 도착했다. 오늘 사장님은 외부 일정으로 2시 전까지 책방에 계시다가 1시 50분에 나가셨다. 2시부터 내가 바통을 이어받기로 했는데 나도 조금 일찍 도착했고 문이 열린 책방으로 *나 님이 오실 수 있었다. 지난주처럼 내가 책방을 10분 늦게 열었으면 기다릴 뻔했다. 오늘도 둘의 수다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다 문을 닫는 건 아닌가 속으로 생각했다. *나 님은 감자칩과 맥주 한 잔 주문하셨고, 그 덕에 나도 맥주 한 캔 점원 베네핏으로 땄다. 사장님이 이미 커피를 사주고 가셨으니까 점원 베네핏을 맥주에 쓰겠다.
우리는 어제도 책방에서 만났다(이러니 투톱이라고 내 맘대로 갖다 붙임). 어제도 맥주와 감자칩을 먹었고. 수다를 떨다 9시에 헤어졌다. 사장님이 책방을 떠나기 전 찍은 사진으로 어제에 이은 수다를 시작했다. *나 님이 자리에 앉을 때만 해도 오늘은 말 안 걸게요, 했는데. 그런 건 안중에도 없다. 1시간도 흐르지 않았다. 백팩을 멘 남자분께서 들어오셨다. 사장님이 떠나기 전 일러둔 책방 손님인가 했다. 별 건 아니고 미리 예약해 둔 책을 찾으러 손님이 오실 수 있다는 당부. 책 찾으러 오셨냐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카페처럼 이용할 수 있냐는 질문. 어랏! 여기 처음 오시는 손님이시구나!! 어머, 반갑습니다. 저희 책방 처음이시군요,라고 할 뻔. 편히 둘러보시고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해달라는 말과 나는 앉던 자리로 돌아왔다. 책장을 한참 보시더니 비닐포장 곱게 되어 있는 평대 코너에 떡 하니 눈에 띄는 <에릭 사티, 이것은 음악이 아니다> 책을 고르셨다. 나는 좀처럼 눈은 가지만 손이 가지 않는 책이다. 빌 브라이슨 살 빠진 버전의 표지랄까. 빌 브라이슨처럼 재치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 책 구입하는 사람 나 처음 봤다. 사실(ㅋㅋ) 책방 보면서 책 몇 권 안 팔아봤다(하하하). 책과 함께 잔와인을 주문하셨고, 공부를 해도 되냐고 묻는다. 그럼요, 그럼요. 그대는 우리 책방 첫 방문자시니까요. 뭐든 편히 이용하세요. 비록 바깥은 따뜻해도 서늘한 공간이지만요. 서늘한 기운에 어깨 시리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그가 뒤를 돌더니 담요로 무릎을 감싼다. 히터를 틀어드렸다. 괜찮다고 하셨지만 회전해서 저도 좀 따뜻하고 싶거든요. 히터를 공유하며 나와 *나 님, 그리고 첫 방문 손님은 고요하게 시간을 보냈다.
5시쯤 두 명의 앳된 손님이 오셨다. 한 분은 재방문 고객이고 한 분은 첫 방문 고객이다(손님에서 고객으로 급 변경해 버렸군, 고치지 않겠다). 책방 소개를 나 대신 친구분께 해 주신다. 핸드드립을 마실 기미가 보여, 사장님이 안 계셔서 오늘 핸드드립 안 된다고 말씀드렸다. 어찌나 다정하신지 친구에게 모카포트도 설명하시는 고객은 매우 더워하셨다. 책방 문을 열어 환기라도 해야 하나. 문을 열어보니 바깥의 따뜻한 공기가 밀려온다. 선풍기를 틀 수 있냐는 물음에 먼지가 보여 힘들 것 같다고 말씀드리며 사장님께 전화하는 순간, 작은 선풍기가 보인다. 이거라도 쓰시겠어요? 하며 틀어줬다. 이 손님은 아이스 모카포트 커피 2잔과 물 3잔을 마셨다. 더위를 많이 탄다고 하셨다. 벌써부터 더우면 어쩌나 하는 마음. 두 분이 나란히 책 한 권씩을 샀다. 웃기다. 두 분이 상반된 계절의 책을 샀다. 더위를 많이 탄다는 재방문 고객은 <나의 누수일지>을 구입하셨고 첫 방문 고객께서는 <스물다섯 가지 크리스마스>를 구입하셨다. 두 권 모두 책방에서 절찬리 판매 중인 인기 책이다. 책방일지를 쓰려고 구입한 책 사진을 찍는데 <나의 누수일지>는 없다. 아무래도 마지막 책 같다. 사장님, 내일 출근하시면 확인 부탁드립니다.
<나의 누수일지> 구입한 재방문 고객은 인덱스도 구입하셨는데 가격을 몰라 사장님께 물어보는 전화까지. 점원이라면 응당 가격을 알아야 하지만, 불친절한 제품은 가격을 눈 씻고 봐도 없다. 이런! 죄송합니다, 손님 그리고 사장님. 두 명의 손님이 아이스 모카포트 커피를 주문하셔서 처음으로 두 잔 한꺼번에 커피를 만들었다. 두 잔 만들고 더워하시는 손님이 곧바로 따로 한 잔 더 주문하셔서 바로 주방으로 가 한 잔의 커피를 더 만들었다. 가격과 커피, 사이사이 얼음물의 혼란으로 허둥거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나 오늘 꽤나 점원스러웠다. 곧 퇴근 시간이다. 저… 공부하시는 손님… 아직 와인이 남았네요, 얼른 드세요, 곧 문 닫아야 합니다. 어떻게 공부하는데 만족스러운 공간이었나요? 조명이 조금 어두우셨죠. 다음에는 다른 자리 추천 드립니다. 친한 친구 손님도 읽던 책 마무리 할 시점입니다. 앗! 몰랐는데 오늘 처음 오신 친구 손님은 어반스케치 중이셨군요. 책방 그려서 SNS에 좀 올려주세요(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