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 테비 Nov 29. 2023

작별

글쓰기동아리모임 과제-손바닥소설

그와 헤어졌다. 남들처럼 카페에서 헤어졌지만, 말 한마디 없이 나는 헤어지고 왔다.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원래는 거래처 사람과 만나기로 했고, 앞 일정이 조금 빨리 끝나 30분 일찍 도착했다. 거래처 직원이 회의가 길어져 미팅을 2시간 연기하길 원했으나 퇴근 시간이라 미팅을 뒤로 미뤘다. 팀장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업무를 보다가 바로 퇴근하기로 했다. 이렇게 된 거 읽던 책이나 마저 읽을 요량으로 조금 더 있기로 했다. 마시던 커피가 떨어졌고 출출하던 참이라 주문대로 가서 메뉴판을 보고 있었다.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근처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다정한 부부의 목소리다. 나도 모르게 얼굴을 돌린다. 내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가 내 옆에 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 눈가에 주름이 생겼지만, 20대 때 모습은 아직 남아 있다. 40대 그를 보다니. 여전히 말랐고 안경을 꼈으며 손톱이 단정하다. 손톱을 깎는 날이면 그의 말이 떠오른다. 손톱이 길면 키보드 쓰는데 불편해, 넌 안 그래? 그 말을 듣는 다음부터 키보드를 두드릴 때 거슬리는 손톱이면 깎을 때가 되었구나 한다. 그러니까, 몸에 새겨질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주문대에서 주문을 마치고 뒤로 물러서 있다. 부부가 주문을 마친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목소리다. 귀에 맴돌기만 했던 목소리가 공기를 타고 내 귀로 들어온다. 자판기 커피만 먹던 우리였는데, 카페에서 커피를 능숙하게 주문하는 사람으로 바뀌었구나. 궁금하다, 부부끼리는 무슨 말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지.


아주 가끔, 우리도 커피숍이라는 카페에 간적 있었다. 학교 앞에는 커피숍이 없었으니까, 데이트를 한다고 도심으로 가는 가끔. 영화를 많이 봤지. 개봉하는 영화는 거의 다 보지 않았을까. 더 이상 볼 영화가 없던 때면 밥 먹고 카페에 가기도 했다. 자판기 커피가 가장 맛있다며 투덜 거리다가도 나란히 앉아서 각자 들고 온 책을 읽다가 수다들 떨다 하다 보면 다시 배고파질 시간이 되기도 했는데. 취향은 달랐지만, 내 책을 빌려 소설을 좋아하는 나를 따라 그 당시 베스트셀러에 오른 소설도 가끔 읽어주곤 했다. 같은 책을 읽게 되면 우리는 책 얘기를 한참 했던 것 같다. 소설가들의 상상력과 문장에 대해서.


주문한 커피와 빵이 나와 쟁반을 받아 들었다. 자리로 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몸을 비켜준다. 간단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자리로 돌아왔다. 그도 아내와 함께 자리로 돌아간다. 둘은 마주 앉았고 각자 핸드폰을 보다가 얼굴을 들고 몇 마디 주고받다가 다시 핸드폰으로 고개를 숙인다. 한 시간쯤 지났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책을 덮어 가방에 넣는다. 부부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정리한다. 그와 나는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돌린다.


오늘 나는 남들처럼 카페에서 헤어지고 돌아가는 길이다. 책을 읽다가 손톱을 깎다가 어슴푸레 떠올라 마음을 후벼파기도 한 얼굴과 목소리였다. 오늘부터 카페에서 헤어지고 돌아오는 모습으로 기억되겠지. 당분간 카페를 못 가겠다. 가슴이 쓰라려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