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퍼(buffer) 같은
동물사를 관리해 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신다. 관리라는 단어에 단순히 동물사 건물에 집중한 관리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동물을 전반적으로 봐주시고 동물이 살고 있는 공간까지 봐주신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의 동물사는 mouse, rat 두 종류가 있다. 그러니 이들이 살기 적합한 온도, 습도부터 케이지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마우스의 무게며 개수까지 관리해 주신다.
같은 마우스라고 해서 모두 같은 방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층에 여러 방이 있다. 둥지를 튼 새들이 다른 둥지로 잘 옮기지 않듯이, 한 번 입주한 마우스들이 다른 곳으로 갈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오염이다. 방마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마우스 이동은 금지다. 뿐만 아니라 사람도 교차 출입을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한다.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그러므로 교수별로 방이 배정되기도 하고, 마우스 종이나 개체수에 맞는 방이 배정되기도 한다.
그럼 동물사를 관리해 주시는 선생님의 경우는 어떨까. 마우스가 살고 있는 방 하나만 관리할 수 없다. 여러 방을 다녀야 하는 선생님이시기에 최대한 마우스를 덜 만져야 한다. 방법은? 핀셋이다. 마우스 케이지를 교체하거나 밥을 채워 넣으면서 마우스 상태도 확인한다. 그러면 부득이하게 만질 수밖에 없다. 이때 핀셋을 사용하신다. 마우스를 옮겨야 하면 핀셋으로 꼬리를 만져 옮기신다.
모든 마우스를 전문가 선생님이 관리해주시는 것은 아니다. 실험 중이거나 일별로 식이를 관리해야 하거나, 식이 종류가 다를 경우 등 직접 관리해야 한다. 어느 날 케이지를 교체하는데 마우스가 죽었다. 마우스가 죽으면 왜 죽었는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항목들을 살펴본다. 피부가 뜯겼는지, 죽은 지 오래되었는지, 이빨이나 외형에서 기형은 없는지, 태어난 때는 언제인지 등을 확인한다.
동물사 출입이 적응될 법한 기간이지만 아직 죽은 마우스를 만지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딱딱하게 굳은 마우스를 만지려면 겁부터 난다. 차갑게 식고 가벼워진 몸이 피부로 전달될 때 내 몸도 서늘해진다. 핀셋이 떠올랐다. 이미 가벼워졌고 딱딱해졌기에 핀셋으로 마우스를 쥐고 들어 올리기 어렵지 않다. 외형을 살펴본다. 눈, 이빨, 피부를 본다. 그리고 뒤 처리를 한다. 고작 핀셋을 마우스와 나 사이에 두었을 뿐인데 마음이 한결 가볍다. 무감각해진다고 해야 할까. 마우스 죽음 뒤에 사정을 객관적으로 불 수 있다. 죽음의 왜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살펴보지만, 안타까운 죽음이라고 무턱대고 여기지 않을 수 있다. 내 감정을 쏟지 않아도 된다. 한편으로 다행이다.
핀셋 같은 작용을 실험(화학 등)에서 버퍼라고 한다. 화학적 측면에서 보면 완충제다. 예를 들면, 급격한 수소 이온의 이동으로 물질의 성질이나 온도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버퍼(buffer) 용액을 넣어준다. 버퍼는 수소 변화가 거의 없는 수용액 상태이므로 평정심을 유지시켜 준다고 할 수 있다.
사람사이에도 일과 일 사이에도 나의 마음에도 버퍼가 필요할지 모른다. 타인과 관계가 너무 가까워 감정적으로 관계를 망치지 않도록, 일에 빠져서 내 생활을 뒤로 미루지 않도록, 하루에도 수십 번 갈팡질팡 하는 마음으로 살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