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9
아이를 낳고
가족과 떨어져 혼자 여행한 것은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다.
여기서 "혼자"는 가족과 함께가 아닌 뜻으로의 혼자이지 실제 혼자만의 여행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딱히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남편이 "진짜" 혼자의 시간을 가지라며 여행을 권유하기도 했지만,
굳이 뭘 애들을 두고 혼자 여행을 가나 싶은 마음에 미루고 있었는데
작년 9월, 가끔씩 참여하던 책 세미나 멤버들로부터 갑작스레 홍콩 여행을 같이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갑자기 웬 홍콩?’일까 싶었지만, 여행의 “테마”가 미식여행으로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는 게 목표였다.
중국음식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너무나 솔깃한 제안이었고, 가족들의 양해로—남편 외에도 주중에 아이들이 학교, 유치원을 가면 하교하원 도우미가 필요했으므로—덥석 비행기표를 예매하게 되었다.
거두절미하고,
새롭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새로움은 오랜만에 어른들만의 여행으로 끊임없이 하루종일 걸었던 것이고,
즐거움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니 말할 것도 없었다.
여행의 시작이었던 비행 시간은 4시간이 좀 안되어 지겨워질만 하니 끝나 적절했고, 함께 한 이들 중 대부분이 빠릿하게 움직이길 좋아해 많은 것을 구경할 수 있었다.
여행 멤버들은
여행을 기획하고 모두의 멘토 격이신 선생님 한 분을 중심으로, 박사과정 중인 선생님의 지도학생들, 금속공예 작가,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 학교 연구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던 나와 친구까지,
모두 여섯이었다.
30대부터 50대까지 나름 다양한 연령대였지만 가장 연장자이신 선생님이 누구보다 걷기를 잘하셔서 별다른 문제 없이 열심히 걸은,
첫날은 내 아이폰 기준 만육천 보, 둘째날은 이만 보를 넘게 걸어다녔으니 정말 많이 걸은 여행이었다.
홍콩은 특이했다.
매력이 넘친다..라고까지는 못하겠지만, 중국스러움과 글로벌한 도시의 면면을 모두 가진 도시였다. 여기서의 “글로벌”은 아마 동서양을 아우르기보단 아시아에 국한된다 봐야겠지만 말이다.
온통 중국말, 그것도 (그나마 본토 중국어를 공부한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익숙하지 않은 번체가 가득한 간판,
이렇게 좁은 골목에 목을 최대한 뒤로 젖혀야 꼭대기가 보이는 높은 건물이 있다니 놀랍다 느껴진 아파트들 (큰 회사 건물은 대로변에라도 있었지, 골목 안 높은 건물은 대부분은 아파트였다),
그리고 ‘아시아 인종 모두 모여라’ 싶었던 다양한 아시안인들—중국인을 비롯한 동아시아계, 동남아계, 인도와 더 먼 서아시아까지—이 모두 보이는 길거리,
본토 표준어인 푸통화, 광동어, 영어 세 가지 언어로 나오는 대중교통의 안내방송,
마침 주말을 낀 여행이라 볼 수 있었던, 소위 명품 거리 큰 건물 앞 가득찬 엄청난 규모의 가사도우미 동남아 언니들의 공동체—이건 어디서도 볼 수 없던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는데, (가장 춥다는 1월도 따뜻하니) 널빤지를 깐 채 노숙을 하고 서로서로 필요한 것들을 사고파는 스팟이 되기도 했다—모임 풍경,
대부분 영어와 푸통화가 모두 통한 식당과 상점들.
내가 방문하기 전 상상했던 홍콩의 풍경에서보다는 서양인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엄청 글로벌한 도시로 더 다양한 인종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그렇지는 않았다. 듣기로는 중국화되면서 많은 기업과 외국인이 싱가포르로 빠졌다더니 정말 그래서인 건지, 이전에 가보지 않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좀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중국 본토에 비하면 “중국스러움”이 아닌 확실히 다른 분위기를 가진다.
언덕이 많다더니 길이 좁은데 경사진 곳이 많아 골목을 다니기가 쉽지는 않았다. 보행자 도로의 계단 역시 폭이 좁아 내려갈 때마다 ‘노약자 친화적인 도시는 아니구나’를 되뇌이게 만들었다. 좁은 길 모퉁이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차로 깜짝 놀라기도 몇 번씩 있었고.
물가도 한국과 비교했을 때 저렴하지는 않아 기념품이나 선물을 사올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사실 한국에서 못구하는 게 없는 세상이다 보니 홍콩스러운 것을 찾기 어려울 거라 여겼다—어쩌다 보니 마지막날 공항 가기 전 유명하다는 제니쿠키를 사오게 됐다. 우리가 묵은 숙소는 셩완에 위치했는데, 마침 걸어서 5분 거리에 가게가 있었던 터였다. 오전 10시에 문을 열지만 9시 반쯤 도착했는데, 이미 서있던 긴 줄. 가족과 함께 갔거나 혼자였다면 절대 기다리지 않았겠지만 오히려 여럿이니 줄을 서서 기다리며 한참 수다를 떨며 기다렸던 것 같다. 숙소에서 받아온 커피를 마시며 앉아서 떨 수다를 서서 나눈 느낌 정도. 결국 10시 반이 되어서야 쿠키를 사들고 나왔으니 한 시간을 기다린 셈인데, 줄을 맨 앞에 서려면 9시쯤엔 나와 기다렸어야 했을 테니 이러나저러나 최소 한 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살 수 있는 쿠키랄까. 여전히 마카다미아 쿠키는 1인 1박스만 살 수 있는 한정 아이템인데, 일행 모두들 즐거이 이야기를 나누다 사온 것이라 그런지 그 정도는 기다릴만 했던 맛있는 쿠키라는 후기를 보내왔다.
1월의 홍콩은 여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온과 날씨를 보여주었고—20도 전후의 살짝 흐린 날씨,
시차도 거의 없는 (한 시간 차) 가까운 거리,
다양한 맛있는 먹을거리—프랑스식 퓨전 딤섬 manmo, 사천 요리 chili fagara, 타이 요리 thai simple kitchen, 모던 중국 요리 mott 32, 길거리 음식 cha chaan teng 등,
모두 좋은 사람들과 각자의 역할을 다한 여섯이 함께 해서 가능했던 2박 3일이었다.
모임을 주도하고 길안내까지 주도해주신 선생님,
계획형 J들 틈바구니 속 홀로 P형 기질이지만 묵묵히 다니며 밤에는 즐거이 사회자 역할로 모두를 재밌게 해주신 ㅅㅎ샘,
호기심과 솔선수범으로 필요한 것들을 잘 찾아준 ㅅㄱ씨,
구경거리를 미리 찾아오고 동선을 주도해준 ㅅㅁ,
총무로 꼼꼼히 다 챙겨준 ㄷㅇ씨.
나는 준비한 것 없이 무얼 했나 싶어 미안해 가게에서마다 빼지않고 열심히 주문하고 물어보는 역할을 맡았다. (소위 좀 더 젊은이들이 많은 거리나 ‘비싼’ 식당은 영어가 많이 통했고, 시장이나 작은 가게에선 푸통화가 통했다.)
마지막으로 그곳의 밤은 실제로 별들이 소곤대고 있었다. 노래 가사 속 그 별이 정말 그 별인지는 모르겠지만, 밤하늘을 바라보며 ‘정말 별들이 소곤대네’ 중얼거려질만큼 별이 잘보이는 밤하늘이었다. 길거리엔 매캐한 자동차 매연이 많아 콜록이게 돼도 대륙 끝 섬의 공기는 생각보다 깨끗한 모양이었다. 특히 피크 트램을 타고 홍콩섬 높은 곳에 올라가 본 야경 너머 하늘에는 한국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선명하고 많은 별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몸은 고단하지만 이런 여행도 좋네 싶었던 며칠.